[황의 e법칙] 4월은 잔인한 달…인간의 야만성과 초록의 희망

 

봄은 화사하고 화려하다. 겨울의 긴 침묵을 밀어내고, 햇빛은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거리마다 꽃이 피고, 나무는 연록의 빛을 틔운다. 사람들은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거리를 걷고, 세상은 다시 살아난 듯 보인다.

 

생명의 계절, 봄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계절은 마음을 온전히 밝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화사함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과 슬픔이 스며든다. 꽃이 만개할수록, 그 향연은 내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슬픈 감정들을 끌어올린다.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잊고 있던 기억과 고통이 선명해진다.

 

영국 작가 엘리엇(T. S. Eliot)은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다. 죽어 있던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힘이 오히려 인간에게 고통이 된다는 뜻이었다. 겨울의 무감각 속에서는 잊을 수 있었던 것들이, 봄이 되면 다시 감각을 되찾으며 되살아난다. 그래서 생명의 회복은 곧 기억의 회복이고, 기억의 회복은 곧 고통의 재현이 된다.


봄의 역설(逆說)

 

봄의 빛은 어둠을 밀어내지만, 동시에 감추어 두었던 것들을 드러낸다. 겨울에는 얼어붙어 있던 감정들이, 봄이 되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회복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통증에 가깝다.

 

연록의 초록은 생명의 색이다. 그러나 그 색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은 단순한 생명의 확장이 아니라 상처 위에 돋아나는 새살을 연상하게 한다. 새살은 회복의 신호이지만, 가장 예민하고 아픈 상태이기도 하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아픔이 번지고, 쉽게 덧난다. 그래서 봄은 완성된 생명의 계절이 아니라, 아직 아물지 않은 생명의 계절이다.


지옥같은 중동전쟁

 

이 계절의 잔인함은 개인의 감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세계는 봄과 어울리지 않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에서 어린아이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집을 잃은 사람들, 거리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피흘리며 사라지는 생명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곳에도 봄은 왔을 것이다. 꽃은 피었을 것이고, 햇빛은 비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빛은 생명을 축복하기보다, 파괴된 삶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고통의 빛이 되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중동전쟁은 또 다른 국제 분쟁의 도화선이 되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들도 숨죽이며 긴장하고 있다. 이 갈등과 분쟁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 에너지와 자원을 둘러싼 구조적 대립과 국제 질서의 패권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석유는 여전히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자원이고, 그 흐름을 둘러싼 패권 경쟁은 때로는 생명보다 더 우선시되기도 한다. 전쟁은 언제나 명분을 내세운다. 안보, 정의, 균형, 억제. 평화. 그러나 그 결과는 늘 민초들의 고통으로 귀결한다. 파괴된 도시, 무너진 가정, 그리고 돌아오지 못하는 생명들.

 

  4.16 세월호와 4.19 혁명

 

한국의 4월은 세계적 비극 위에 또 다른 기억을 겹쳐 놓는다.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는 이 계절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아이들과 교사 등 304명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구조될 수 있었던 시간 속에서 구조되지 못한 생명들,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 속에서 사라진 아이들의 이름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깊은 곳에 남아 있다.

 

그날 이후로, 4월의 꽃은 더 이상 희망의 꽃, 기쁨의 꽃이 아니게 되었다. 노란 리본은 계절의 색이 되었고, 바다는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또한 우리의 4월은 독재에 항거한 4.19 혁명의 시간이다. 자유와 정의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던 학생들과 시민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쓰러져간 수많은 생명들. 민주주의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피와 목숨을 건 희생 위에서 겨우 세워진 질서였다.

 

  4월은 잔인한 달

 

봄의 화사함과 화려함은 우리의 아픔과 우리의 슬픔과 함께 다가온다. 꽃이 피는 속도와 생명이 사라지는 속도가 같은 시간 속에 존재한다. 자연은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인간의 세계는 여전히 파괴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4월은 단순한 봄이 아니다. 생명이 피어나는 계절이면서, 동시에 생명이 스러진 계절이다. 이러한 모순과 역설 속에서 봄은 더욱 잔인해진다.

 

밝은 빛 아래에서 그림자는 더 깊어지고, 꽃들이 화사하고 화려하게 만개할수록 그 이면의 상처와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시인의 말처럼, 그래서 봄은 잔인하다. 그 중에 4월의 봄은 가장 잔인하다.

황상규 칼럼니스트
ESG평가연구소장,  ISO26000한국전문가포럼 공동대표,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독일 프랑크푸르트(괴테)대학 환경윤리학 박사 수료, , ‘사회책임의 시대‘(2013)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