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2016년 영화 <곡성> 속 어린 소녀의 날카로운 일갈은 10년이 지난 2026년 오늘,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심장을 향해 비수처럼 꽂힌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양상 속에 이란이 ‘세계의 숨통’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자,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에는 말 그대로 곡성(哭聲)이 터져 나오고 있다. 유가는 순식간에 배럴당 $80를 돌파했고, 물류는 마비됐다.
이 아비규환의 정점에서 우리는 뼈아픈 질문을 마주한다. 우리 경제에 진정으로 ‘중헌 것’은 1원이라도 싼 가격표였나, 아니면 국가의 생존을 담보할 에너지 안보였나.
경제성의 함정, 안보의 절벽
우리는 그동안 ‘경제성’이라는 환상에 취해 있었다. 2025년 기준, 우리의 중동 원유 의존도는 72.4%에 이른다. 액화천연가스(LNG) 역시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전체 수입량의 30% 이상을 중동의 좁은 해협에 의지해 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중동산이 ‘가장 싸고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 ‘경제적 선택’의 대가는 혹독하다.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면 당장 국내 정유사와 발전소는 가동 중단을 우려해야 하는 처지다.
에너지는 소비재가 아니라 국가의 혈액이다. 100원을 아끼려다 100조 원의 국가 시스템이 멈춰설지도 모르는 지금의 상황은, 우리가 그동안 경제성이라는 외눈박이 논리에 갇혀 있었음을 방증한다.
독일의 눈물과 중국의 실리
경제성과 안보가 충돌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는 멀리서 볼 것도 없다.
경제성에 올인한 독일은 과거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PNG)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의존도를 55%까지 높였다. 이후 독일은 러-우 전쟁 한 번에 국가 경제가 통째로 흔들리는 ‘에너지 인질’이 되었다.
반면 중국은 러시아, 중앙아시아, 남미로 수입선을 철저히 다변화했다. 2026년 현재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음에도 중국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이유는, 에너지를 ‘시장’이 아닌 ‘국가 전략’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알래스카와 러시아, 안보적 실용주의로의 전환
이제 우리는 경제성이라는 좁은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를 당장의 건설비용으로만 재단해선 안 된다. 알래스카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0'에 수렴하는 미국 영토이며, 태평양만 건너면 되는 최단거리 공급망이다.
중동 의존도를 10%만 낮춰도 호르무즈 위기 시 우리 경제가 버틸 수 있는 체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는 비용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 보험료'다.
•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 역시 안보적 실용주의로 접근해야 한다. 서방의 제재 국면 속에서도 중국이 러시아와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협상을 밀어붙인 이유는 명확하다.
해로(海路)가 막혀도 육로를 통해 에너지를 수급할 수 있는 '최후의 비상구'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우리에게도 러시아의 LNG와 북극항로는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닌, 지정학적 포위망을 뚫을 전략적 카드다.
안보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
안보는 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늘 ‘아까운 돈’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금처럼 호르무즈에서 곡성(哭聲)이 터진 후에 대안을 찾는것은 이미 늦다. 지금의 혼돈은 우리에게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단기적 경제성 논리를 뛰어넘어, 국가 생존을 위한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의 경제성이 아니다. 어떤 전쟁과 봉쇄 속에서도 우리 공장의 불이 꺼지지 않게 만드는 ‘에너지 주권’이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LNG수입자 그룹회의(GIIGNL)에서 우리는 낮아진 유가를 반영하여 LNG 가격구조를 변경해 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일본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반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우리는 LNG 공급의 안정이 최우선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이 중헌가?

▲ 임종순 칼럼니스트 / 서울여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전 한국가스공사 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