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그간 러시아에서 LNG를 받아왔던 유럽연합(EU)이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파트너로 미국과 중동의 손을 잡았다. 한쪽으로 치우친 공급망 불균형 타파에는 성공했지만 이로 인한 비용 부담 증가와 또 다른 의존 체제를 구축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여전하다.
에너지 안보라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공급망 다변화는 어느 국가도 필요한 작업이지만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역시 관심사로 떠오르는 상황. 이렇듯 달라진 글로벌 LNG 지형도는 필연적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에너지 수급에도 연쇄 작용을 불러올 것이 분명해 관련 국가들의 고민 역시 깊어지고 있다.
◆ 상승하는 에너지 비용, 제조업 경쟁력에도 부담
유럽 매체 ‘Euronews’는 지난 24일(현지 시각) EU가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 의존도를 줄이는 대신 미국과 중동으로부터 LNG 수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구조를 재편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어진 전략 변화의 핵심이다.
보도에 따르면 EU는 2021년 약 40%에 달했던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크게 낮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공백을 LNG로 채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구조적 부담을 떠안게 됐다. 특히 미국산 LNG가 주요 공급원으로 자리 잡으면서 유럽의 에너지 안보가 또 다른 형태의 외부 의존으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그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은 아니다. 한 국가에 종속된 체제는 필연적으로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로 자리매김할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각국은 LNG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독일은 북해 연안에 부유식 LNG 터미널을 잇달아 구축했고,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역시 저장시설과 재기화 설비 확대에 나서며 수입 능력을 끌어올렸다. 이로 인해 유럽은 단기간 내 LNG 수입 능력을 크게 확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이 과정에도 야기되는 그림자가 바로 가격 문제다. LNG는 기본적으로 액화·운송·재기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파이프라인 가스보다 비용이 높다. ‘Euronews’는 이로 인해 유럽의 에너지 비용이 구조적으로 상승했으며 제조업 경쟁력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에너지 집약 산업에서는 생산 비용 증가를 이유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 유럽의 LNG 수요 확대, 국제 가격 끌어올릴 수도
지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지금은 어느 한 국가, 지역의 변화가 단지 국지적인 변화만을 야기하지 않는다. 이번 유럽연합의 LNG 수입 구조 변화가 글로벌 LNG 시장 전체를 흔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유럽이 대규모 수요자로 등장하면서 기존에 LNG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온 아시아 국가들과의 물량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그를 잘 보여준다. 그중 한국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확률이 높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세계 최대 LNG 수입국 가운데 하나로 전체 전력 생산과 산업 에너지에서 LNG 비중이 높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약간의 가격 변동만 발생해도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즉각적이다.
실제로 LNG 가격 상승은 전력 도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의 비용 부담을 높인다. 결과적으로 수출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유럽의 LNG 수요 확대는 국제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글로벌 LNG 시장은 수요가 급증할 경우 가격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는 특성을 보이는데, 유럽이 겨울철 난방 수요를 중심으로 대량 구매에 나설 경우 아시아 시장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2022년 이후 유럽이 LNG 확보에 나서면서 아시아 시장 가격이 급등했고 일부 국가에서는 전력 비용 상승과 공급 불안이 현실화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한국의 경우 단순한 가격 문제를 넘어 수급 안정성 자체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민감하다. LNG는 장기 계약과 단기 구매가 혼합된 구조인데, 시장 가격이 급등할 경우 단기 물량 확보 비용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과 유럽은 동일한 주요 공급원—미국, 카타르 등—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국 입장에서는 가격이 높은 시장에 물량을 우선 배정할 유인이 크다. 이는 수급 경쟁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 LNG 의존 줄여야하지만 재생에너지 확대는 미미
‘Euronews’는 유럽이 에너지 안보 확보에는 일정 부분 성공했지만 완전한 에너지 독립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간헐성과 저장 문제로 인해 단기간 내 LNG 의존을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결국 유럽의 선택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탈러시아’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LNG 중심 구조가 강화되면서 에너지 시장이 점점 더 지정학적 경쟁의 영향을 받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포함한 주요 수입국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가격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에너지 전략을 요구받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유럽발 LNG 수요 확대가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긴장 상태 역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LNG 수요 확대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단순히 가격 경쟁을 넘어 에너지 안보 전략의 전면적 재검토를 요구받게 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단기적 대응을 넘어 중장기적 관점에서 에너지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국제 협력 체제 강화도 필수적이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주요 LNG 수입국들과의 공동 협력 체제 구축이 논의될 수 있으며 EU와 아시아 간 에너지 협력 역시 새로운 외교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공동 구매나 기술 교류, 재생에너지 분야 협력은 에너지 시장의 지정학적 긴장을 완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대체 에너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수소·암모니아 등 차세대 에너지원은 LNG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에너지 저장 기술(ESS)의 발전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를 뒷받침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기술은 아직 상용화 단계에서 비용과 효율성 문제를 안고 있어, 단기간 내 LNG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결국 한국을 포함한 주요 수입국들은 단순한 ‘가격 수용자’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에너지 전략 수립자로 변모해야 한다. 유럽발 LNG 수요 확대가 글로벌 시장의 구조적 긴장을 장기화시키는 가운데 한국의 대응 전략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