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규제發 포장 구조 재편.. 저탄소 경량화, 기업 생존 가른다

  • 등록 2026.02.28 14: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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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경량화 없이는 수출길 막히는 시대 현실화 코앞
설비 교체 비용 부담되는 중소,중견 기업에겐 악재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포장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면 수출조차 힘들어질 판이에요.”


유럽연합(EU)이 2030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새로운 포장 규제가 국내 수출 기업들에 현실적인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의 ‘친환경 포장’은 환경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진 사안이었지만 앞으로는 기업 매출, 나아가 수출을 좌우하는 문제로 진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재활용 가능성, 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 탄소 배출량을 입증하지 못하면 공급망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로 바뀐 탓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 이하 PPWR)가 있다. 이 규정은 모든 포장의 재활용 가능성 확보, 플라스틱 포장 내 재활용 원료 의무 함량 적용, 과대포장 제한, 포장 최소화 설계를 핵심으로 한다. EU 시장 접근 조건을 제도화한 조치로 평가된다.


EU 집행위 자료에 따르면 2030년 이후 재활용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포장재는 시장 유통이 제한될 수 있으며, 플라스틱 포장에는 일정 비율 이상의 재활용 원료 사용이 의무화된다. 이는 제품 설계 단계부터 원재료 구성과 공정 효율, 탄소 배출 데이터 관리 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포장 방식으로는 EU 시장 진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 높은 재활용률에도 커지는 원가 부담

환경부에 따르면 2024년 국내 폐기물 재활용률은 86.5%다. 숫자만 놓고 보면 아쉬울 것 없는 수준이지만 현장에서의 반응은 딴판이다. 체감 지수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량은 증가 추세이고, 식품용으로 활용 가능한 고품질 재활용 원료(rPET·rPP)는 공급이 제한적이다. 잦은 가격 변동 역시 기업들이 부담을 토로하는 부분이다. 


여기에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에 따른 분담금 부담이 더해진다. 제조·수입업체는 의무 재활용 비율을 맞춰야 하며, 미이행 시 비용을 납부해야 한다. 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을 높일수록 원가가 상승하는 구조에서 기업들은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재활용률이 높다고 해서 기업 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원재료 사용량을 줄이지 않으면 재활용 원료 비용과 분담금을 동시에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업계에서는 ‘재활용 확대’보다 ‘원재료 감량’이 보다 현실적인 대응 전략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사용량 자체를 줄이면 원가 부담과 규제 부담을 동시에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업계가 주목하는 것이 물리적 발포 압출 기술이다. 독일 산업 전문 매체 ‘Packaging Journal’은 26일 보도를 통해 네덜란드의 MEAF Machinery와 스위스의 Promix Solutions가 공동 개발한 질소 기반 발포 압출 기술에 주목하고 나섰다. 


보도에 따르면 이 기술은 화학 발포제 대신 질소 가스를 활용해 시트 내부에 미세 기공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동일 두께 대비 무게를 낮추면서도 기계적 강도와 적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Packaging Journal’은 MEAF 측 자료를 인용해 해당 설비가 기존 압출기 대비 30~65% 낮은 CO₂ 배출량을 기록한다고 전했다. PET·PP 등 재활용 가능 소재뿐 아니라 소비 후 재활용 원료(PCR) 적용도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업계에서는 시트 중량을 10~20% 감축할 경우 원재료 비용 절감은 물론 운송 중량 감소에 따른 물류비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물류 단가 상승과 탄소 규제 강화 흐름을 감안하면 경량화는 복합적인 비용 절감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원재료 비용, 운송비, 탄소 배출 부담을 동시에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설비 전환에 드는 비용 무시 못해.. 현실적 어려움 호소

다만 설비 전환의 경제성은 여전히 핵심 변수다. 기존 라인을 전면 교체해야 하는지, 부분 개조(retrofit)로 적용 가능한지에 따라 투자 규모는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수십억 원대 자금이 필요할 수 있어 중소·중견 업체에는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논의는 점차 확대되는 분위기다. 유럽 거래선이 탄소 배출 데이터 제출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ESG 평가가 납품 조건에 반영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비 효율은 단순 생산성 문제가 아니라 거래 유지 조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역시 ESG 성과와 탄소 저감 설비 투자 여부를 대출 심사에 반영하는 추세다. 설비 효율은 자본 조달 비용과도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보면 결국 경량화 기술 도입은 ‘초기 투자 부담’과 ‘중장기 비용 절감’ 사이의 균형을 따지는 문제로 귀결된다. 유럽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대응을 서두를 가능성이 크고, 내수 중심 기업은 투자 시점을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PPWR 시행은 단기적으로는 부담 요인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재활용 원료 의무 사용 확대와 포장 최소화 요구가 동시에 강화되는 환경에서는 단순 소재 전환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저탄소·경량화 설비를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격차가 구조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응 속도에 따라 수출 판도와 공급망 지위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설비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전략적 판단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손영남 기자 son364@entropy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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