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으로 급선회한 한국…“러시아 원유 우회수입 가능”

  • 등록 2026.04.08 07: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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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카작 경유 러 원유 중국 공급 제재유예 1년 연장
급한 불 끄면서 장기수급안정 모색…수입선 다변화
미국산 경질유비중 증가 예상…정유시설 교체 모색

 

한국 정부는 에너지 수급 안정을 위한 급한 불을 끄는 한편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로 중장기 수급여건 안정화도 함께 꾀하고 있다.

 

강훈식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산유국들을 방문, 한방울이라도 더 석유를 확보한다는 각오로 80여개 석유화학 제품들의 수급불안을 실시간 점검하고 ‘빨간색’을 ‘파란색’으로 바꾸는 중이다.

 

강훈식 실장이 7일부터 카자흐스탄 등 3개국을 방문, 원유와 나프타 추가 확보에 나선다. 특히 세계 10위권 산유국으로 OPEC+ 회원국인 카자흐스탄이 눈에 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카자흐스탄을 통해 러시아 석유를 간접적으로 수입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당초 순방국 포함됐던 알제리 빼고 카자흐스탄 추가

 

강 실장은 7일 청와대 브리핑에서 4월 현재 전년 대비 59%의 원유를, 5월엔 69% 정도를 각각 확보한 상태라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도입 의존도는 61%, 나프타는 54%에 이른다고도 설명했다.

 

강 실장은 이날 카자흐스탄·오만·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위해 출국했다. 강 실장 일행의 이번 산유국 순방은 당초 걸프연안국협의회(GCC) 회원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그리고 아프리카 제 2대 산유국인 알제리였지만, 알제리 대신 카자흐스탄를 포함시켰다. 

 

원유와 나프타 장기 확보가 순방 목적이다. 강실장이 최근 UAE를 방문해 직접 2400만 배럴을 확보한 것이 단기 불안감을 해소한 정도라면, 이번 출국은 장기 물량 확보를 위한 차원으로 관측됐다.

 

정부는 4~5월 인도분 기준 17개국에서 1억1000만배럴의 대체 원유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강실장이 주도해 앞서 계약한 2400만 배럴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물량도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있는 한국 선박 26척의 안전 통과를 국제 파트너들과 조율하고 있으며, 비축유 활용과 홍해 우회 항로 검토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시도하는 중이다.

 

에너지 부처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이 동행하지만,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직접 위기 수습에 나서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 오만 등 서아시아 왕정국가들이 내각 장관(secretary)보다 비서실장을 권력의 최측근 실세로 더 예우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 원유 구입할 가능성도

 

카자흐스탄 원유는 고품질 경질류로, 정유사들은 정제마진이 적다. 중질유를 들여와 정제하면서 각종 연료유와 석유화학제품을 만들어 팔아야 이익(정제마진)이 많이 남는데, 경질유는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2026년 현재 수입 가능한 카자흐스탄 원유 물량도 그다지 많지는 않다는 관측이다. 카자흐스탄 원유의 최대 소비자는 중국과 유럽이기 때문이다. 다만 카자흐스탄 석유인프라는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강대국을 잇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한국이 러시아 석유도 구입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 원유는 러시아 흑해 최대 항구인 노보로시스크(Novorossiysk)까지 카스피해송유관컨소시엄(CPC) 송유관으로 연결된다. 이곳에서 유조선에 싣고 수출국으로 향한다. 러시아 석유가 CPC를 통해 카자흐스탄으로 인입될 수도 있다.

 

CPC는 카자흐스탄 아타수(Atasu)에서 중국 아라산코우(Alashankou)를 잇는 1000km 이상의 구간을 포함, 서쪽 카스피해 지역과도 연결된다. 카자흐스탄은 이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를 중국으로 운송, 미국 등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러시아 전문가인 이상준 교수(국민대)는 7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유럽과 러시아로 가는 CPC 송유관은 양방향으로 원유를 보낼 수 있다”면서 CPC를 통해서도 한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구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카자흐스탄 거친 러 원유 중국 공급 제재 유예 1년 연장

 

이상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이 현 시점에서 러시아 원유를 들여올 방법은 여럿 있다.

 

우선 러시아 원유를 직접 구매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전쟁 중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석유를 직접 들여오지 못한 지는 꽤 됐다. 운석열 정부 당시 한미일 합의로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안 하기로 하면서 한때 6~7%(보수적으로 5% 가량) 차지했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한 것이다. 

 

최근 미국이 제재를 유예, LG화학이 러시아산 나프타 2만7000톤를 구입한 실적이 있다. 다만 트럼프가 부여한 한달 시한 안에 전쟁 중인 러시아로부터 대량 물량을 안정적으로 들여오는 계약에 선뜻 나서는 기업(정유사)이 없는 게 문제다.

 

이 대목에서 카자흐스탄이 중요한 러시아 원유 대체 수입선이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부가 카자흐스탄 송유관을 통해 내년 3월까지 계속 러시아산 원유를 중국으로 운송할 수 있도록 하는 승인한 점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 해준다. 카자흐스탄 에너지부는 지난 1일(아스타나 현지시간) “미 재무부 협의를 거쳐 현재 중국-카자흐스탄 송유관을 통한 러시아산 석유의 중국 판매 허가 적용기한을 내년 3월19일까지 연장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지구촌 전체의 경기가 급속히 침체했었던 코로나19 당시 카자흐스탄의 원유를 싼값에 들여온 경험이 있다. 카자흐스탄 원유를 CPC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 아스트라한과 콤소몰스카야를 거쳐 흑해 마리나 터미널로 운송, 여기서 유조선에 싣고 흑해를 빠져나와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거쳐 홍해→아라비아해→인도양→한국으로 오는 석유길을 통해 카자흐스탄 석유를 수입했던 것이다. 

 

 

트럼프의 대러 태도 예측불가, 러 원유 직수입 대신 카작 우회

 

이상준 교수는 지금 한국이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한다. 카자흐스탄을 통해 러시아 석유를 수입할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트레이더를 통해 싱가포르에서 중개수수료를 얹어주고 비싼 가격에 원유를 구입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양질의 러시아 원류를 저렴하게 사는 잇점이 거의 상쇄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19 당시처럼 한국이 유럽으로 수출되는 카자흐스탄 원유 물량 중 남는 것을 기차 등을 통해 수입하는 정도에 그치지 말고, 러시아 원유 수입량을 점점 늘려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송유관은 유럽쪽, 중국쪽으로 향하는데, 유럽으로 가는 송유관 일부는 러시아로 향한다”면서 “파이프라인 원유는 항상 반대방향으로도 흐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중장기 대량 원유 물량을 소화하려면 아무래도 금융시장을 이용을 해야 한다. 카자흐스탄은 미국의 루블화 결제 허용 시한이 끝나더라도 곧바로 달러 거래로 전환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교수는 “올해 중앙아시아 정상회담 등에서 에너지 안보협력도 의제에 올릴 수 있다”고 관측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예측 불가능 트럼프의 언행을 고려,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일(서울 시간) <타스통신>에 “대한민국은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일시 해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기회를 아직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가 산자부 간부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 간부는 “통화를 할 수 없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한국 정부는 결국 미국의 ‘변화난측’한 태도를 고려, 러시아 원유 대량계약 대신 카자흐스탄 원유 또는 이 나라를 통한 러시아 원유 수입 쪽으로 장기 대량 물량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이 대러 제재 완화하는 진짜 이유

 

한국의 원유 수입이 여의치 않으면 미국도 손해보는 측면이 있다. 미국은 한국산 항공유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2024년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항공유 수입 중 71%(하루 약 7만7000 배럴)가 한국산이다. 항공유 선진국인 한국이 원유를 확보하지 못해 항공유를 제때 충분히 만들지 못하면 미국 서부 지역 항공 및 물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 역시 문제다. 한국 반도체를 최대 수입국은 중국과 미국이다. 반도체는 에너지가 부족하면 생산이 어렵다. 한국이 반도체를 제때 충분히 만들어 공급하지 않으면 중국은 물론 미국도 적잖게 타격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중국도 카자흐스탄에서 송유관으로 받는 러시아산 원유를 한국과 나눠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이상준 교수는 “트럼프가 (러시아 에너지 제재 유예기간을) 한 달을 열어줬지만, 지금 상황을 봤을 때 궁극적으론 더 열어줘야 될 거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 서아시아(중동)산 중질유로 높은 정제마진을 누려왔다. 현재 조금씩 풀고 있는 비축유 대부분이 중질유다. 하지만 미국과 카자흐스탄 등으로부터 경질유를 수입하는 비중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중동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집중된 화석에너지 패권을 빼앗을 계획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한국도 앞으로 미국산 경질유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경질유 정제시설로 탈바꿈 해야 한다. 당장은 중질유 중심의 정제시설 가동 한도에 맞춰 적당히 섞어서 정유 공정을 돌릴 수 있지만, 경질유 비중이 더 커지면 설비 자체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현  <엔트로피타임즈> 편집위원

러시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원, 

지구촌 팩트체크기구 GFCN 회원. 고정 칼럼 [엔트로피 網] 등을 집필

 

 

이상현 기자 dipsey.lee@yande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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