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일본이 석탄발전소에서 암모니아를 함께 태우는 ‘혼소(co-firing)’ 기술을 앞세워 탄소중립 해법 찾기에 나섰다. 지난 20일, Nikkei Asia는 일본이 기존 석탄 인프라를 유지하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암모니아 연소 기술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50년 넷제로 목표를 유지하되 급격한 탈석탄 대신 ‘연료 전환’을 통해 점진적 감축을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암모니아는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무탄소 연료다. 일본 최대 발전사인 JERA는 아이치현 헤키난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에 암모니아를 20%가량 섞어 태우는 실증을 진행하며 상용화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암모니아를 수소와 함께 ‘차세대 연료’로 규정하고 공급망 구축과 장기 구매계약 체계 마련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일본이 이 같은 선택을 한 배경에는 구조적 현실이 자리한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가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화력발전 의존도가 높아졌고, 재생에너지 확대 역시 계통 제약과 입지 갈등으로 속도가 더디다. 전력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 석탄발전 설비를 활용하는 혼소 방식은 ‘현실적 절충안’으로 부상했다.
◆ 기존 설비 살리는 전환, 산업 전략으로 확장
암모니아 혼소의 가장 큰 장점은 설비 전면 교체 없이도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발전소와 송전망 등 기존 자산을 유지한 채 연료 비중만 조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좌초자산 위험을 줄이면서 감축 목표에 접근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일본은 이를 단순한 발전 기술이 아니라 ‘산업 전략’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중동·호주 등과 청정 암모니아 생산 프로젝트를 연계하고, 장기적으로는 아시아 지역에 연료를 공급하는 허브 역할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암모니아를 연료·운송·저장 산업과 결합해 새로운 수출 시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논란도 적지 않다. 현재 생산되는 암모니아의 상당 부분은 천연가스 개질 공정을 거친다. 이 경우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저장하지 않으면 전 과정 배출량 측면에서 감축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혼소 비율이 20% 수준에 머물 경우 발전소 전체 배출 감축 폭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서 “석탄발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또 다른 변수는 비용이다. 암모니아는 현재 발전 연료로서 경제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 발전 단가 상승은 결국 전기요금과 직결된다. 정부 보조와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상용화 속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 한국, 기술·조선·발전 산업까지 영향권
이 같은 흐름은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 역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석탄발전 감축과 무탄소 전원 확대를 병행하고 있다. 최근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수소·암모니아 혼소 발전 도입이 중장기 과제로 포함됐다. 발전공기업들은 단계적 혼소 실증을 준비 중이며, 일부 설비는 장기적으로 전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국의 여건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주민 수용성과 송전망 포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해상풍력과 태양광 설비는 늘고 있지만 계통 보강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LNG 발전 의존도 역시 높아 연료 수입 가격 변동에 취약하다. 이런 조건에서 암모니아 혼소는 전력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감축 목표를 관리할 수 있는 ‘완충 전략’으로 거론된다.
다만 구조적 차이도 존재한다. 한국은 원전 비중을 일정 수준 유지·확대하는 정책 기조를 갖고 있어 무탄소 전원의 포트폴리오가 일본보다 다변화돼 있다. 반면 암모니아 연료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에너지 안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암모니아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도 리스크다. 공급망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가격 급등이 발생할 경우 전력시장 부담은 고스란히 국내로 전가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남는다. 암모니아 혼소가 재생에너지 확대와 병행되는 ‘가교 전략’이라면 의미가 있지만, 재생에너지 투자 속도를 늦추는 명분으로 작동할 경우 탈탄소 전환의 실질적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 정책 설계의 방향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암모니아는 대규모 저장과 해상 운송이 필요한 연료다. 이는 곧 조선·해운·플랜트 산업과 직결된다. 국내 조선사들은 암모니아 추진선과 운반선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LNG 운반선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차세대 연료 시장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다.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 역시 발전소 연소기 개조, 저장 설비 구축, 수입 터미널 확충 등 새로운 수요를 기대하고 있다. 항만·탱크·배관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될 경우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공급망이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은 부담이다.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가격 변동성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 암모니아 전략이 또 다른 수입 의존 구조를 고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일본은 기존 석탄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며 점진적 감축을 택했다. 한국 역시 급격한 구조 전환과 전력 안정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암모니아 혼소는 하나의 기술적 해법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전환 전략의 중심이 될지, 과도기적 수단에 머물지는 정책 의지와 시장 설계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