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2026년 이탈리아에서 열리고 있는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은 경기장 안팎에서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빙판 위에서는 세계 최정상 선수들이 기록과 메달을 향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화석연료 기업 후원을 둘러싼 논쟁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후원사의 도덕적 정당성을 묻는 수준을 넘어 기후 위기 시대에 동계 스포츠가 물리적으로 존속할 수 있는지, 그리고 국제 스포츠 재정 구조가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올림픽 선수 88명 “화석연료 기업과 결별해야”
논쟁의 직접적 계기는 선수들의 공개 서한이었다. 지난 2월 9일, 88명의 올림픽 선수와 53명의 예비 선수는 IOC가 화석연료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사실이 AP통신, 로이터 등 주요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논쟁은 급속히 확산됐다. 선수들은 “기후 변화는 추상적 위기가 아니라 우리의 경기장을 사라지게 하는 현실”이라고 주장하며, IOC의 글로벌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 사우디 아람코를 직접 지목했다.
아람코는 하루 약 1,0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석유 기업 가운데 하나로, 2023년 순이익이 1,200억 달러를 상회하는 에너지 업계의 공룡이다. 환경을 파괴하는 대가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이들이는 대표적인 기업이라는 뜻이다.
선수들은 이러한 기업이 올림픽의 ‘지속가능성’ 메시지와 병치되는 것이 상징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한 선수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단순히 기록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이 존재할 수 있도록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문제 제기는 단순한 감정적 호소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과학적 데이터는 선수들의 우려를 뒷받침한다. 2024년 미국의 기후 분석 기관 Climate Central이 발표한 연구는 선수들의 문제 제기가 근거 없는 논란거리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의 변모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동계올림픽 개최 조건의 급격한 변화를 수치로 제시했다.
![온실가스가 중간 수준으로 감축되는 시나리오(SSP2-4.5)를 적용할 경우 2050년대에는 약 52개 도시(56%)만이 안정적 조건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자료= Climate Central]](http://www.entropytimes.co.kr/data/photos/20260208/art_17714829462318_4876d6.jpg)
연구진은 과거 동계올림픽 개최지이거나 개최 잠재력이 있는 전 세계 93개 도시를 분석한 결과, 현재는 약 87개 도시(94%)가 비교적 안정적인 겨울 기후 조건을 유지하고 있지만, 온실가스가 중간 수준으로 감축되는 시나리오(SSP2-4.5)를 적용할 경우 2050년대에는 약 52개 도시(56%)만이 안정적 조건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개최 가능 도시가 사실상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는 특히 알프스와 북미 일부 지역에서 겨울 평균 기온 상승 폭이 글로벌 평균을 상회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전 지구 평균 기온은 이미 약 1.1~1.2℃ 상승했으며, 유럽 알프스 지역은 이보다 더 빠른 온난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 결과 자연설만으로는 경기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최근 동계올림픽에서는 경기용 설원의 상당 부분이 인공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2014년 소치, 2018년 평창, 2022년 베이징 대회 모두 인공설 비중이 매우 높았다는 것이 단적인 증거다.
지난 세 번의 동계 올림픽에서 인공설 비중이 매우 높았다는 것은 동계올림픽의 기후 의존성이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공설은 경기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막대한 자원을 소모한다. 베이징 대회의 경우 대부분의 설원이 인공적으로 조성되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물과 전력이 사용되며 탄소 배출 문제를 낳았다.
◆ ESG 시대, 스포츠 후원 시장 재편 신호탄 될까
IOC는 이러한 기후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최근 대회들은 기존 시설 활용 비율을 높이고, 임시 구조물 설치를 최소화하며,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추진해왔다. 2024 파리 올림픽은 대회 운영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밀라노·코르티나 역시 기존 인프라 활용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후원 구조 자체에 대한 전환 계획은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IOC 대변인 마크 애덤스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속가능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후원사와도 이 가치를 공유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IOC의 재정 구조가 있다. IOC 재정보고서에 따르면 2017~2021년 사이 총 수입은 약 76억 달러였으며, 이 가운데 약 30억 달러 이상이 글로벌 TOP(The Olympic Partner) 프로그램을 통한 후원 수입이었다. 방송 중계권 수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기업 후원 역시 전체 수입의 약 40% 안팎을 차지하는 핵심 축이다.
IOC는 전체 수입의 90% 이상을 국제연맹과 국가올림픽위원회, 선수 지원 프로그램에 재분배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구조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후원 계약을 쉽게 포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비판론자들은 ‘재정 안정성’이 곧 “가치 중립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ESG 기준이 글로벌 기업 평가의 핵심 지표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스포츠 후원 역시 가치 판단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글로벌 지속가능 투자 자산 규모는 이미 수십조 달러에 이르며, 탄소 배출 전략은 기업의 주가·신용평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이런 환경에서 올림픽 후원은 단순한 마케팅 계약이 아니라, 기업의 장기 전략과 이미지 정치의 일부가 된다.
결국 이번 논쟁은 세 가지 층위에서 읽힌다. 첫째, 과학적 데이터가 보여주는 동계 스포츠의 물리적 기반 축소. 둘째, IOC의 후원 의존적 재정 구조. 셋째, ESG 시대에 스포츠가 감당해야 할 상징적 책임이다. 개최 가능 도시 수가 2050년대에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은 단순한 환경 통계가 아니다. 이는 올림픽의 지리적·경제적 구조가 재편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빙판 위의 승부는 몇 초 만에 갈리지만, 후원 계약의 방향은 수십 년의 흐름을 결정한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을 둘러싼 화석연료 후원 논란은 일회성 갈등이 아니라, 국제 스포츠가 기후 위기 시대에 어떤 가치 위에 설 것인가를 묻는 구조적 시험대가 되고 있다. IOC의 선택은 단순한 기업 명단의 문제가 아니라, 올림픽이라는 상징이 21세기 중반 이후에도 지속 가능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