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에 의존한 한국, 청정에너지로 버틴 미국

  • 등록 2026.02.11 16: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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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기후 속 전력망, 한국과 미국의 다른 선택 '눈길'
비용과 안정성, 청정에너지의 경제적 의미를 묻다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막바지 추위가 밀어닥친 2월 10일 오전, 한국의 전력 수요는 올겨울 최고치인 8만8,950MW를 기록했다. 한파로 난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 사용량이 빠르게 늘어난 것. 비상 상황임이 분명했지만 동요는 없었다. 정부와 전력거래소는 100GW 이상의 공급능력을 확보해 수급에는 큰 차질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마냥 안심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발전원 구성을 보면 현 상황을 낙관할 수 없음이 드러난 탓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저기압의 영향으로 태양광 발전량은 감소했고, 전력망을 실제로 떠받친 것은 LNG 발전과 석탄, 원전이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아직 제한적인 한국 전력 구조의 민낯이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 반복되는 극한 기후, 커지는 전력망 부담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여름 폭염과 겨울 한파가 번갈아 발생하면서 계절별 전력 수요 최고 기록이 잇따라 경신되고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냉난방 수요는 전력 피크를 높이고, 이는 발전 설비 예비율 관리와 계통 안정성 확보라는 과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를 야기시키는 것이 바로 심각한 화석연료 의존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한국은 전체 발전에서 LNG와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바꿔 말하면 재생에너지 활용이 그만큼 미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제 에너지 통계를 보면 2024년 기준 한국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태양광이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풍력과 수력이 뒤를 잇지만 전체 전력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반면 석탄과 LNG 등 화석연료는 약 60%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원전은 약 30% 내외를 담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전력 구조는 ‘화석연료+원전’이 중심축이고, 재생에너지는 보완적 역할에 가깝다.


이 구조는 평상시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국제 연료 가격이 급등하거나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2022년 글로벌 LNG 가격 급등 당시 전력 도매가격과 한국전력의 재무 부담이 동시에 커졌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간의 경험에서 드러났듯 연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안보와 비용 안정성에서 반복적으로 시험대에 오른다. 반면 미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며 발전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2024년 미국에서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이 처음으로 석탄을 넘어섰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두 에너지원이 전체 전력의 약 17%를 차지하며, 15% 수준으로 내려온 석탄을 추월한 것. 여기에 수력과 기타 재생에너지를 포함하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24%를 웃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통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겨울 폭풍으로 천연가스 생산과 운송이 차질을 빚으면서 가스 발전이 제약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이때 풍력과 태양광이 일정 부분 전력 공급을 메우며 계통 부담을 완화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통적으로 ‘기저 전원’ 역할을 하던 화석연료가 오히려 공급망 문제에 취약성을 드러낸 반면, 이미 설치된 재생에너지 설비는 연료 조달 과정 없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된 것이다.


◆ 겨울 폭풍 속에서 드러난 재생에너지의 힘

미국 기후·에너지 정책 감시 단체인 Climate Power는 지난 3일, 발표한 논평에서 “풍력과 태양광이 겨울 폭풍 동안 수백만 가구의 전력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텍사스와 중서부 일부 지역에서는 혹한으로 천연가스 생산과 수송이 차질을 빚으며 가스 발전이 제약을 받았지만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 일정 부분 전력 공급을 보완함으로써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이 보도의 골자다. 


이 사례는 전력망 안정성에 대한 기존 인식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전통적으로 전력망 안정성은 ‘연료를 저장할 수 있는 발전원’이 담당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실제 위기 상황에서는 연료 공급망 자체가 취약 지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반면, 이미 설치된 풍력과 태양광 설비는 연료 조달 과정 없이 즉각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그 특성이 모습을 드러낸 구체적 사례인 셈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출력이 기상 조건에 좌우되는 간헐성 문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송전망 투자를 병행하면서 계통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에너지정보청(EIA)은 향후 몇 년간 태양광과 풍력 비중이 더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규 발전 설비의 상당 부분이 태양광 중심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비용 측면에서도 차이는 나타난다. 태양광과 풍력은 초기 설비 투자 이후 연료비가 들지 않는다. 발전 단가가 점차 낮아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도매 전력 가격 상승 압력을 완화하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반면 한국은 LNG 가격 변동이 발전 단가에 직접 반영되는 구조다. 연료비 조정이 곧 전기요금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체계다.


결국 양국의 차이는 발전 비중의 숫자 차이를 넘어 전력 시스템의 위험 구조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은 극한 기후 상황에서도 기존 발전원을 통해 안정적으로 대응해 왔지만, 그 기반은 수입 연료와 원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면서 전력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저장 기술과 계통 투자를 통해 변동성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 비용과 안정성, 두 축의 재편 필요한 이유

청정에너지 확대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쟁점은 비용이다. Climate Power는 재생에너지가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연료비가 들지 않기 때문에 발전 단가가 국제 연료 가격에 직접적으로 연동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도매 전력 가격의 변동성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서 전력 가격 상승 압력이 완화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물론 초기 설비 투자와 계통 보강 비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연료비 급등이 곧바로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구조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 중요하다.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물가와 산업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발전원 구성은 단순한 환경 정책을 넘어 경제 구조 전반을 좌우하는 문제로 확장된다.


이 지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드러난다. 한국은 여전히 LNG와 석탄 등 연료비 연동 구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국제 가스 가격이 오르면 발전 단가가 상승하고, 이는 한전의 재무 부담과 전기요금 조정 문제로 이어진다. 최근 몇 년간의 경험은 전력 구조가 곧 경제 구조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미국 일부 지역은 재생에너지와 저장 기술을 확대하면서 전력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화석연료 의존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가격 변동과 공급 차질에 대한 완충 장치를 점진적으로 확보해가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재생에너지 확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은 아니다. 계통 안정성 확보, 송전망 확충, 저장 기술 투자, 주민 수용성 등 복합적 과제가 뒤따른다. 그러나 극한 기후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 어떤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는 정책의 선택 영역에 속한다. 연료 가격 변동에 노출된 구조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발전원을 다변화해 위험을 분산할 것인지의 문제다.


올겨울 최대 전력 수요 기록은 한국이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의 전력 구조가 어디에 의존하고 있는지도 분명히 드러냈다. 극한 기후 속에서 전력망을 지탱하는 힘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점점 더 구체적인 정책 과제로 돌아오고 있다. 변화의 필요성은 분명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속도와 실행 방식이다.

손영남 기자 son364@entropy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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