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中 전기차 관세에 하이브리드로 선회.. 유럽서 커지는 K-자동차 변수

중국산 하이브리드 EU 판매 2년 새 13배 폭증 "15% 안팎으로 줄여라"
압박공식 조사 없이 자율 제한 카드 꺼낸 EU.. 10월 베이징 회담이 1차 분수령
현대차·기아, 가격 압박 덜 수 있지만 中 현지 생산 본격화는 중장기 변수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유럽 자동차 시장의 무게중심이 하이브리드로 옮겨가는 사이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그 틈새를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순수전기차(이하 BEV)에 고율의 상계관세를 물리자 중국이 관세 대상에서 빠진 하이브리드로 방향을 틀면서 판매량이 폭증한 것이다.

 

이미 중국산 제품에 상당 부분 시장을 점령당한 EU로서는 이 상황을 좌시할 수 없는 상태다. 조직적인 반발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에 EU 집행위원회가 중국 정부에 하이브리드의 EU 시장 점유율을 15% 안팎으로 자율 제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유럽 친환경차 시장의 주도권 다툼이 본격적인 통상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 틈새 파고든 中 하이브리드.. EU, 15% 자율제한 선제 카드 던졌다
이번 수출 급증의 출발점은 관세 구조의 격차로부터 시작됐다. EU는 2024년 10월부터 중국산 BEV에 대해 기본관세 10%에 브랜드별로 7.8~35.3%의 상계관세를 부과해 합계 최대 45.3%의 관세를 매겼다.

 

반면 하이브리드 차량은 이 조치에서 제외되어 기본관세 10%만 내면 된다. 순수전기차 문턱이 높아지자 중국 업체들이 관세 부담이 적은 하이브리드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이하 PHEV)로 물량을 돌리는 풍선효과가 뚜렷해진 배경이다.

 

이는 통계 수치에서 명확히 발견된다. EU 통계청(Eurostat) 통계를 인용한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중국산 풀 하이브리드(HEV)의 EU 수입량은 2022년 659대에서 올해 1~7월 16만 6,62대로 폭증했다.

 

같은 기간 중국산 PHEV 역시 2022년 연간 5만 6,706대에서 올해 1~7월 21만 7,764대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월간 수입량 기준으로는 2024년 10월 약 3,800대에서 올해 7월 약 5만 대로 13배 넘게 껑충 뛰었다. 여기서 중국산은 개별 브랜드가 아닌 중국 내 공장에서 생산되어 유럽으로 들어온 차량을 의미한다.

 

중국 업체들이 하이브리드로 방향을 튼 것은 유럽 시장 자체의 수요 지형이 바뀐 점도 작용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올해 1~8월 EU 신차 시장에서 HEV는 36.6%, PHEV는 10%를 기록하며 하이브리드 계열 비중이 합계 46.6%에 달했다.

 

같은 기간 BEV 점유율은 15.8%에서 21.7%로 늘어난 반면 내연기관(휘발유차) 등록은 18.6% 감소했다. 하이브리드가 순수전기차를 밀어냈다기보다 내연기관에서 이탈한 수요를 전동화 차량들이 함께 흡수하는 흐름이며,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비와이디(BYD)·체리(Chery)·리프모터(Leapmotor) 등이 그 수혜를 크게 누렸다.

 

위기감을 느낀 EU는 결국 강경한 협상 카드를 꺼냈다. 지난 17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당국 사정을 아는 인통통을 인용해 브뤼셀이 중국 정부에 중국산 하이브리드의 역내 점유율을 약 15% 안팎으로 묶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3분의 1을 상회하는 점유율을 반토막 수준으로 낮추라는 압박이다. EU 관계자는 "중국이 우리 시장으로의 수출을 스스로 제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제한 조치에 나설 것"이라며 산업 공동화를 막기 위한 통상 방어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구상하고 있는 모델은 EU가 1986년 일본 자동차의 공습을 막기 위해 맺었던 자율수출제한(VER) 방식이다. 당시 일본은 물량을 자율적으로 제한해 쿼터제 부과를 피했고, 토요타와 닛산 등은 현지 공장 설립으로 대응했다.

 

EU가 공식 조사 대신 자율 제한부터 요구한 것은 아직 하이브리드에 대한 반덤핑·상계관세 조사가 시작되지 않아 관세를 당장 매기려면 무역구제 조치의 법적 근거를 신설해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및 수입 쿼터제 설정이 유력한 다음 카드로 거론된다.

 

배경에는 거대해지는 무역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EU의 대중 상품 무역적자는 3,606억 유로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도 9%가량 늘었다. 이번 15% 캡 요구는 오는 10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유럽 관련 주요 무역 회담을 앞두고 던진 선제 제압용 카드로 풀이된다. 다만 중국은 WTO 규정에 어긋난다며 즉각 반발하고 있어 실제 타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 현대차·기아의 복잡해진 셈법과 향후 관전 포인트
유럽 통상 당국의 중국산 하이브리드 제재 움직임은 유럽 친환경차 시장의 주요 메이커인 현대차·기아에 단기적 반사이익과 중장기적 불확실성을 동시에 안겨주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시장 내 직접적인 체급 격돌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된다.

 

현재 유럽에 진입 중인 BYD '실 U DM-i'나 체리 '자쿠 7 SHS' 등 중국산 PHEV SUV 모델들은 현대차 투싼, 기아 스포티지 하이브리드·PHEV와 차급 및 핵심 고객층이 정확히 겹친다. 만약 EU의 압박으로 중국산 물량에 자율 제한 쿼터가 씌워지거나 고율의 추가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중국 업체들이 자랑하는 가성비 무기의 상쇄로 현대차·기아의 가격 경쟁 압박은 한층 완화될 수 있다.

 

특히 국내 울산·아산·화성 공장 등에서 생산되어 유럽으로 수출되는 한국산 물량은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가 0%로 적용되기 때문에 고율 관세를 맞을 중국산 수입차 대비 상대적인 가격 우위를 점할 여지가 커진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호재로만 단정하기에는 시장과 공급망 내 숨겨진 변수들이 만만치 않다. 현재 공개된 모델별 등록 통계만으로는 중국산 PHEV의 폭증이 현대차·기아의 하이브리드 판매량을 직접적으로 침범했는지, 아니면 기존 내연기관 이탈 수요를 각자 나누어 흡수한 것인지 세부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중국산 억제가 곧바로 K-자동차의 판매량 증가로 자동 직결된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분석이다.


생산 구조상의 차이 역시 불확실성을 더하는 요소다. 현대차·기아가 유럽에서 판매하는 투싼과 스포티지 등 주력 하이브리드 물량의 상당수는 한국 수출분이 아닌 체코 및 슬로바키아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다. 현지 생산분은 원래부터 수입 관세 이슈와 무관하므로 한·EU FTA로 인한 수출 관세 방어막 효과는 한국에서 생산되어 건너가는 일부 차종 및 물량에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고려해볼 가장 결정적인 중장기 변수는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유럽 현지 생산 체제 전환 속도다. EU의 자율제한과 무역관세는 어디까지나 중국에서 만들어 들어오는 수입 완성차에만 작용한다. 과거 1986년 일본 차들이 VER 조치 이후 현지 공장 설립으로 규제를 우회했듯 중국 기업들 역시 현지 생산 거점 구축을 빠르게 앞당기고 있다.

 

실제로 BYD의 헝가리 공장이 올해 4분기 가동을 앞두고 있으며, 체리 자동차 역시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한다. 스텔란티스 합작을 통한 리프모터의 유럽 내 생산까지 본격화될 경우 규제를 통한 수입 차단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무역 분쟁의 격화가 유럽 자동차 시장 전체에 미칠 파급력도 관전 포인트다. EU와 중국 간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져 보복 관세전으로 번지거나 통상 불확실성이 증대될 경우,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유럽 친환경차 시장 전체의 성장 동력이 위축될 위험이 존재한다. 이는 유럽 친환경차 시장 확대를 발판 삼아 전동화 전환을 추진하던 현대차·기아의 중장기 로드맵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결국 다가오는 10월 베이징 회담에서 중국 정부와 완성차 업계가 EU의 점유율 15% 캡 요구에 어떤 타협안이나 거부 카드를 내놓을지가 1차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중국이 요구를 일축할 경우 EU 집행위원회가 즉각적인 반덤핑 조사나 세이프가드 발동 등 공식적인 수입 규제 절차에 착수할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