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 못 하면 친환경 못 쓴다.. EU, 27일부터 그린워싱 규제 적용

친환경 같은 막연한 표현, 공인된 근거 없이는 못 써
EU 수출 한국 기업도 환경 문구·라벨 점검 필요

 

[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유럽 시장에서 ‘친환경’, ‘그린’, ‘탄소중립’ 같은 표현을 앞세워 제품의 환경성을 홍보해온 기업들의 마케팅 방식이 달라진다. 소비자를 오인하게 할 수 있는 환경 관련 표현과 지속가능성 표시를 제한하는 유럽연합(EU) 지침이 오는 27일부터 회원국 국내법을 통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EU 소비자를 상대로 한 광고와 판매 전반에 적용되며 유럽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도 예외 없이 따라야 한다. 적용 대상은 ‘소비자의 녹색전환 역량 강화(이하 EmpCo)’ 지침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환경성을 홍보하려면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하며 탄소상쇄에 기반한 탄소중립 마케팅 역시 제한받게 된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이 지침은 2024년 채택됐으며 회원국들은 올해 3월 27일까지 국내법에 반영한 뒤 9월 27일부터 적용하도록 돼 있다. 기존 소비자보호 규정을 손질해 제품의 환경·사회적 특성과 지속가능성에 관한 허위·과장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골자다.

 

◆ 친환경 한마디는 안 된다.. 탄소중립·환경 라벨도 규제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은 실제 환경성과보다 제품이나 기업의 친환경 이미지를 과장하거나 소비자가 오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홍보하는 행위를 말한다. EU가 규제에 나선 배경에는 환경 관련 표현과 라벨이 지나치게 많은 데다 그중 상당수가 소비자가 실제 환경성을 판단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EU 집행위가 공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2020년 EU에서 조사한 환경 관련 주장 가운데 53%가 모호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고, 40%는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아예 없었다. 시장에 유통되는 환경 라벨도 230개가량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무분별한 그린워싱을 뿌리 뽑기 위해 마련된 이번 새 규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포괄적인 친환경 표현에 대한 강력한 규제다. ‘그린’, ‘친환경’, ‘환경에 좋다’처럼 제품 전체의 환경성이 우수한 것으로 오인될 수 있는 단어는 기업이 공인된 환경 성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EU 에코라벨이나 각국 공인 환경 라벨, 에너지효율 최고 등급 등이 입증 기준에 해당한다.

 

이런 강수를 둔 이유는 제품의 일부만 바꿔놓고 전체를 친환경으로 포장해 소비자를 착각하게 만드는 눈속임이 만연해서다. 제품의 일부 원료를 재활용 소재로 바꾸거나 특정 생산공정에서 탄소배출을 줄였다고 해서 제품 전체를 친환경이라고 표현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EU 이사회와 집행위 역시 구체적인 범위나 근거를 설명하지 않은 채 제품 전체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처럼 부풀리는 사례들을 주요 금지 대상으로 지목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환경성을 강조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친환경 같은 포괄적 표현 대신 주장의 대상과 범위를 같은 광고나 포장 안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는 것. 또 재활용 소재를 썼다면 어떤 소재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온실가스 배출을 줄였다면 어떤 기준과 비교해 얼마나 줄였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문구를 뒷받침할 데이터를 갖추는 일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지속가능성 라벨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만든 로고나 표시를 공식 환경 인증처럼 사용하는 방식은 제한된다. 지침은 국가가 정한 라벨이거나 독립적인 검증을 포함한 인증제도에 기반하지 않은 지속가능성 표시를 금지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더해 탄소중립을 둘러싼 표현에도 변화가 생긴다. 제품이나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외부 탄소감축 사업이나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이를 상쇄한 뒤 제품을 탄소중립이라고 홍보하는 방식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EU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쇄를 근거로 제품이 온실가스 측면에서 중립적이거나 감축 또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행위를 금지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이는 거짓·과장 홍보를 막기 위한 조치일 뿐 기업이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기업이 환경 관련 주장을 하려면 ‘무엇을 줄였는지’와 ‘어떤 기준으로 측정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 관련 문구가 단순한 광고 카피를 넘어 제품의 실제 성과와 연결돼야 하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점검해야 할 범위가 넓어지는 셈이다. 제품 포장과 라벨은 물론 홈페이지, 온라인 쇼핑몰, 광고 등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환경 관련 표현 전반이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상공회의소(IHK)는 지난 2일 기업들에 9월 27일 규정 적용을 앞두고 환경·지속가능성 광고와 포장, 자체 환경 라벨 등을 점검하라고 안내했다. 특히 이미 생산된 포장재와 제품 재고까지 새로운 기준에 맞춰야 할 수 있어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EU 수출 진행하는 한국 기업도 지침 따라야
이번 규제는 EU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EmpCo는 소비자 대상 거래의 광고와 마케팅, 제품 표시 등에 관한 소비자보호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어서 EU 소비자를 상대로 제품을 판매하는 해외 기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유럽 시장에서 제품의 환경성을 강조하는 기업이라면 관련 표현과 라벨이 새로운 기준에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EU 지역으로 수출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로 지침의 구속을 받게 된다. 자동차와 의류·화장품·식품 등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제품을 유럽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제품에 붙은 환경 관련 문구와 라벨부터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지침의 적용 대상은 소비자를 향한 광고와 표시여서, 배터리나 화학제품처럼 기업 간 거래 중심인 제품은 직접적인 영향권 밖이다. 물론 이런 기업도 소비자를 겨냥한 광고나 브랜드 홍보가 있다면 따져봐야 한다.

 

유의해야 할 점은 기업 전체의 ESG 성과와 개별 제품의 환경성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특정 제품을 친환경이라 홍보할 수는 없어서다. 제품의 원료와 생산 과정에서 실제 어떤 환경 개선이 이뤄졌는지, 그 수치가 어떤 기준에 따라 산출되었는지까지 명확히 입증해야 한다.

 

이는 기업 내부의 데이터 관리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까지 환경 관련 광고 문구를 주로 마케팅 부서가 결정했다면 앞으로는 생산·품질·환경·법무 부서가 제품별 환경 데이터를 함께 관리하고 실제 성과와 광고 문구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해진다.

 

규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실제로 부담을 느끼는 대목도 이런 실무 문제다. 프랑크푸르트 상공회의소는 제품 생산과 유통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업의 경우 이미 만들어놓은 포장이나 재고 제품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EU 회원국 소비자보호 당국 협의체(CPC 네트워크)는 지난 6월 30일 이른바 기존 재고에 대한 공통 원칙을 내놨다. 새 규정 시행 전에 생산·주문·유통됐거나 매장에 진열된 제품에 대해서는 기업이 성실하게 규정에 맞추려는 조치를 취할 경우 초기 집행 과정에서 단계적인 접근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이 원칙은 법적 구속력이 없고 별도의 유예기간을 둔 것도 아니어서 원칙적으로 27일부터는 재고 제품도 새 기준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번 규제가 모든 환경 관련 표현을 금지하는 것은 아닌 것도 사실이다. 구체적인 환경 성과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관련 주장을 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친환경이라는 포괄적 표현에서 벗어나 제품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개선됐는지 설명하고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갖추는 것이다.

 

로이터도 지난 18일 이달 말 EU의 새 규제가 시행되면서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관련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검증 가능한 환경 데이터 없이 그린이나 친환경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행위와 자체 제작한 지속가능성 라벨, 탄소상쇄를 활용한 탄소중립 주장이 주요 규제 대상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번 규제의 목적은 기업의 친환경 마케팅 자체를 막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소비자가 제품의 환경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업이 내세우는 주장에 걸맞은 근거를 분명히 제시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방식도 바뀔 전망이다. 과거에는 ‘얼마나 친환경적인가’가 관건이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무엇으로 입증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라는 의미다. 무엇보다 이번 규제는 친환경을 단순한 홍보 문구로 써온 관행에 제동을 거는 동시에 제품의 환경 성과와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곧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유럽 시장을 겨냥하는 한국 기업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단순히 친환경이라는 문구 하나로 시장을 공략하려던 기업에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남겨진 셈이다. 이제는 그 수식어를 어떻게 포장할까 고민하기보다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근거를 확보했는지부터 점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