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網] 누가 국토균형발전에 저항하는 기득권자인가?

전략 없는 부동산정책은 기득권층에 바치는 선물
부동산, 저출생, 균형발전, 사교육 등은 같은 뿌리
한 세대가 모두 사라져야 청년문제도 해결 가능해 
수십조 대응예산에도 저출생은 악화…청년예산은?
동화 ‘피리부는 사나이’의 저주 한국에서 재연되나?

 

[엔트로피타임즈 이상현 편집위원] 


근로(사업)소득을 저축 또는 투자해서 자산을 형성할 수 없는 공동체는 ‘공정’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자유시장 경제로 볼 수도 없다. 한국사회는 이미 이런 운명에 근접해 있다.

 

한국사회에서 ‘공정성’ 문제는 사실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다. 단죄받지 않은 친일파의 후손은 금수저 지위를 유지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곤궁함을 못이겨 멸족하거나 흙수저로 대를 이었다. 친일파와 겹치는 부분이 많은 재계의 부호나 관가의 고관대작, 변호사・의사 등 ‘사’자 집안 등은 금수저 집안을 일궈 자녀들에게 그 지위를 세습했다. 친일부역 완전척결이나 출발선의 공평함을 지적하면 빨갱이, 공산주의자로 몰렸다. 이념의 비호 아래, 그렇게 불공정은 대한민국에서 표준으로 정착했다.

 

불공정은 누적적으로 가속화 돼 왔고, 대를 이어 심화됐다. 요즘 청년 세대에서 금과 흙의 태생적 구분은 더 큰 출발점 격차로 이어졌다. <중앙일보>가 최근 국가데이터처 자료를 분석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20~39세 청년 가구의 순자산 상위 20%(5분위)와 하위 20%(1분위) 격차가 78.1배까지 벌어졌다.

 

청년세대의 문제는 사실 모든 세대의 문제

 

구조화 된 불평등이 심화되는 알고리즘은 간단하다. 상위권 대학 진학 결정력이 높아진 고액과외는 교육격차를 확연히 벌렸다. 사회진출 때 좋은 일자리(대기업, 은행 등) 채용을 결정하는 금수저들은 버젓이 자녀들의 일자리를 교환(barter)하고 있다. 비금수저 출신 일부 고위 관료들도 현직 때 금수저 뒷배를 봐주는 조건으로 ‘금수저 밥 모임(일자리 교환)’에 숟가락을 얹기도 한다.

 

노동력이 헐값이 된 자유시장경제는 냉혹하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아파트 가격이 200%, 300% 오르는 동안 2030세대의 실질가처분소득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5060 부모님 세대가 누렸던 저금리 혜택도 다른 세상 얘기다. 최근 주택담보대출 금리까지 오르면서, 대다수 2030 세대는 아파트 구입을 포기해야 했다. 어떤 여당 국회의원은 “폐차된 버스를 개조해 청년 주거수단으로 삼자”고 제안했다가 호된 비난을 들었다.

 

청년이 부모님 사후 아파트를 물려 받으려면 얼추 60세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도 상속세 낸 뒤 형제나 자매가 N분의 1로 나눠가지면 온전히 물려받을 수도 없다.

 

60대 이후 은퇴하는 수도권 거주 부모님 세대는 매우 얇은 연금의 노후대책 말고는 기댈 데가 없다. 그래도 양도소득세나 증여세가 만만찮아 아파트를 팔지 못한다. 결국 비싼 집을 깔고 앉아 궁색하게 산다. 자녀 사교육비에 많은 돈을 지출하는 4050 세대는 사력을 다해 서울에 2030평 규모의 아파트를 간신히 장만했지만, 실질 소유권은 은행이 갖고 있다. 자녀교육 때문에 수도권을 뜨지 못한다. 결국 높은 연봉을 받아도 대부분 담보대출 이자와 사교육비로 탕진한다.

 

결혼하려는 청년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예식장을 쉽게 예약할 수 있는지, 지방에 거주하는 신혼부부가 자녀를 출생할 때 가장 가까운 산부인과 병원이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지 말이다. 그런 뒤 그동안 저출생대책, 그리고 장차 ‘청년대책’에 얼마의 국가예산을 편성했는지, 편성할 지 확인해 보라. 예산은 막대했지만, 문제는 외려 악화됐다. 앞으로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게 한국이다.   

 

누가 일자리・교육・의료가 열악한 비수도권으로 가겠는가

 

2030 청년 일자리와 주거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와 부동산, 수도권 과밀화, 저출생, 세대갈등, 인공지능(AI) 등과 단단히 얽혀 있다. 여러 문제가 얼키고 설켜 하나의 치료를 위해 다른 부작용을 감내해야 할 말기암적 상황이다. 

 

이 문제를 정책으로 풀 수 없다. 전략이 있어야 하지만, 전략가는 눈 씻고 찾아 보기 힘든 대한민국이다. 전략가라면 문제의 본질을 보고 난제들을 선순환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단호히 말하건대, 전략 없는 ‘청년정책’은 사기(fraud)다. 

 

개발연대를 살아온 한국전쟁 세대, 그들을 이은 베이비부머 세대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주택을 구입했다. 저축도, 금융투자도 그들의 자산을 형성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세대는 자녀 대학교육을 시켰다. 자녀에게 흙수저를 물려주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그렇게 수십년의 세월이 후딱 흘렀다. 

 

그 사이 태어난 고향은 낯선 땅이 됐고, 북적이고 악취 풍기는 서울과 수도권이 어느덧 고향이 됐다. 집을 나서기 싫은 날이 더 많다. 굶지는 않지만 빠듯한 씀씀이, 병치레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기 때문이다. 

 

이런 수도권 거주 6080세대에게 집은 마지막 안식처다. 친구집 마실 다니듯 병원을 드나든다. 수도권에서만 빠른 협진이 가능하다. 이런 6080 새대에게 “비싼집 깔고 앉아 있지 말고, 공기좋은 시골에 가서 살라”고 말한다면, 무책임한 세대갈등만 불러올 야박하고 이기적인 발상이다. 

 

6080의 자녀인 수도권 3050은 어떤가. 구두쇠 소리 들어가며 자식들 대학 뒷바라지 한 부모님들 덕분에 ‘인(in) 서울’로 대학 졸업하고 수도권에 간신히 직장을 잡았다. 얼마 안 돼 자신들이 부모가 됐고, 자녀들 역시 ‘인(in) 서울’ 시키지 위해 사교육에 몰두한다. 대치동 학원이 아니더라도 서울 소재 학원에 보내야 마음이 놓인다. 지방의 중고등학교와 지방의 입시학원을 다니면서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다고 생각하기 힘든 건 비현실적인 생각이 아니다.

 

부동산정책 따위 잊자! 

 

자! 3050은 직장과 자녀들 때문에, 6080은 병원과 생애 자산, 생의 마지막을 집에서 마무리하고 싶은 본능 때문에 각각 수도권을 떠날 수 없다. 이게 진실이다. 30대부터 80대까지, 또 이들의 자녀인 1020까지 수도권을 떠나지 못한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전체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모여 옹기종기 사는 이유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달랑 부동산정책으로 문제를 푼다? 소가 웃을 일이다. 게다가 역대 부동산 정책은 수도권 땅부자, 집부자들의 집값만 올려준 기득권 정책에 다름 아니다. 이재명 정부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정책이 아니라 전략을 논의해야 한다. 전략의 핵심은 국토를 균형적으로 성장, 발전시키는 것에서 출발하되 이를 통해 청년 일자리와 저출생은 물론 노년층의 안정적 노후생활 문제까지 줄줄이 해결하는 것이다. 정부는 법령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물론 공직자도 국민이기 때문에 재산권과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전략과 정부정책방향이 그 사적 권리와 충돌한다면 정부는 공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조치할 수 밖에 없다. 그게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명령이다. 이미 이재명 정부 청와대도 다주택자 3명이 주택을 처분하는 대신 공직을 버렸다. 국책은행, 국책연구소도 다 마찬가지다. 근무지 지방이전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승진을 포기하고 정년은 보장받으면 된다.

 

국립대학인 서울대학교부터 지방으로 모두 옮겨야 한다. 서울과 분당 소재 서울대병원도 경상도와 전라도로 옮겨야 한다. 서울에는 아주 일부 전공학부와 진료과목만 남겨야 한다. 많은 의사들과 교수들을 설득하되 장기적으로 외국인 교수와 의사들,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사립대학도 지방으로 옮기지 않으면 정부 지원을 대폭 줄여야 한다. 대학이 이전하면 입시학원은 저절로 따라간다.

 

서울 수도권에 본사를 둔 기업들에게 부동산, 수도권 집중, 저출생, 국가성장동력 저해의 책임을 직접 물을 수는 없다. 다만 지방에 본점을 둔 기업에 대한 파격적 금융, 세제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법인의 비업무용토지에 대한 합리적 차별 법리를 원용, 수도권 기업들이 재무관리 차원의 임대사업을 못하도록 제한할 수도 있다. 주력 업종과 무관하게 부동산 임대사업으로 버는 비중이 높다면 금지하거나 무거운 세금을 물릴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은행들의 지방 거주 희망자를 위한 주택담보대출금리 차등화는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 

 

피리부는 사나이의 저주

 

기업과 병원, 대학, 입시학원이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으로 흩어지면 사람들도 함께 흩어질 수 있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 번 시작되면, 이해관계자들이 저마다의 이익을 좇아 빠르고 연쇄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물론 저항세력은 만만치 않다. 그 저항이 이해도 간다. 하지만 나라의 말기암이 자기 세대, 자기 동네, 자기 계층만의 이익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저항하는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독일 하멜론의 전설을 언어학자 그림 형제가 동화로 만든 <피리부는 사나이>를 떠올릴 때다. 사나이는  하멜론 주민들과 이 마을에 들끓었던 쥐들을 모두 없애주고 돈을 받는 계약을 맺는다. 사나이가 마법의 피리를 불자 쥐들이 사나이를 따라 강으로 이동해 모두 죽는다. 하지만 탐욕에 눈 먼 하멜론 사람들이 사나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자, 사나이는 다시 피리를 불었고, 마을의 아이들이 사나이를 따라 사라졌다.      하멜른 시청 옛 공문서에 ‘1284년 6월 26일 130명의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라는 기록이 나중에 발견됐다고 한다.

 

한국사회는 이미 피리부는 사나이의 저주에 빠진 걸 수도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복구해 가난(쥐)을 몰아낸 뒤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상생의 약속(피리부는 사나이와의 계약)을 스스로 저버린 것은 아닐까.

 

탐욕은 반드시 저주를 부른다.   


 

이상현  <엔트로피> 편집위원

러시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원, 

지구촌 팩트체크기구 GFCN 회원. 고정 칼럼 [엔트로피 網] 등을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