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36GW 허가받고 가동은 1%뿐.. 정부, 계획입지로 판 엎는다

해상풍력, 민간 개척서 정부 주도로.. 2031년까지 25GW 예비지구 지정
25GW 지정이 곧 건설 물량은 아냐.. 기존 허가사업·계통·인프라까지 넘어야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36GW 대 360MW. 지금까지 국내 해상풍력 사업자가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물량은 36GW에 달하지만 실제 상업운전에 들어간 규모는 360MW에 불과하다. 허가 물량 가운데 실제 발전소로 전환된 규모가 1% 수준에 그치는 셈이다.

 

정부가 해상풍력 개발 방식을 바꾸기로 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민간 사업자가 직접 바다를 찾아 입지를 확보하고 복잡한 인허가와 이해관계를 하나씩 풀어가는 방식으로는 정부가 제시한 대규모 보급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정부는 지난 2일 한성숙 국무총리 주재로 제1회 해상풍력발전위원회를 열고 계획입지 제도의 본격적인 가동을 알렸다. 정부가 먼저 해상풍력 개발에 적합한 구역을 찾아 예비지구로 지정하고, 기본설계와 환경성 검토, 주민·어업인 등 이해관계자와의 협의를 거친 뒤 발전지구와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2031년까지 25GW 규모의 예비지구를 확보하고 올해 안에 첫 예비지구를 지정할 계획이다. 이후 기본설계와 환경성 검토, 민관협의 등을 거쳐 빠르면 2033년부터 계획입지를 통한 해상풍력 보급을 시작한다는 구상이다.

 

지금까지의 해상풍력 발전은 사업자가 바다를 찾아 개발 가능성을 확인하고 사업을 추진했다면 앞으로는 정부가 먼저 개발 공간을 정하고 주요 이해관계를 조정한 뒤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달라지게 되는 셈이다. 정부가 먼저 바다를 정하는 새로운 방식이 해상풍력의 허가와 가동 사이를 좁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좋은 바다보다 멈추지 않는 바다 찾는다
이번 발표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25GW라는 숫자보다 입지를 정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정부는 해상풍력 입지정보망을 활용해 풍황뿐 아니라 환경, 어업, 해양교통, 군 작전 등 301개 해양공간정보와 규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예비지구를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풍력발전기를 세우기 좋은 곳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요소까지 입지 단계에서 함께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발표안에 따르면 예비지구로 지정된 뒤에는 기본설계와 환경성 검토가 진행된다. 동시에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민관협의회를 통해 주민과 어업인 등 이해관계자와 협의를 진행한다. 이후 발전지구를 지정하고 경쟁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절차로 이어진다.

 

사업자가 선정된 이후에는 해상풍력법에 따라 관련 인허가 절차를 통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해상풍력법 시행 전에는 개발사업자가 직접 입지를 찾은 뒤 여러 법령에 걸친 인허가와 이해관계 조정을 각각 풀어야 했다. 정부가 이번에 바꾸려는 것은 이 과정의 순서다.

 

사업이 상당 부분 진행된 뒤 새로운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입지를 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사업을 멈춰 세울 수 있는 요인을 미리 확인하고 조정하는 구조로 옮겨가는 것이다.

 

계획입지의 핵심이 단순히 허가를 빨리 내주는 것에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업자가 개발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풀어야 했던 입지와 이해관계의 문제를 정부가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조정해 사업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의미를 둔 이번 계획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에 시선이 몰리고 있다.

 

◆ 25GW 지정 이후가 진짜 시험대
그러나 이를 두고 장밋빛 전망만 쏟아내는 데는 무리가 있다. 정부가 2031년까지 지정하겠다고 밝힌 25GW를 곧바로 실제 건설되는 해상풍력 25GW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탓이다.

 

정부가 언급한 25GW는 완공된 발전소가 아니라 예비지구 규모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예비지구를 통해 약 20GW의 추가 보급 물량을 확보하고 2040년 누적 45GW의 해상풍력 보급을 달성한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제시한 누적 보급 전망은 2030년 3.1GW, 2035년 25GW, 2040년 45GW다.

 

따라서 이번 정책의 성패는 예비지구를 얼마나 많이 지정하느냐보다 그 바다가 실제 발전지구로 전환되고 사업자 선정과 착공, 상업운전까지 얼마나 지체 없이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기존 사업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도 중요한 변수다. 이미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물량만 36GW에 달하는 만큼 정부가 새롭게 계획입지를 통해 확보하는 사업과 기존 사업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관건이다.

 

정부는 기존 사업 가운데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해상풍력법 체계에 편입해 사업 추진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기존 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이면서도 새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가 앞으로 지켜볼 부분이다. 새로운 바다를 발굴하는 동시에 이미 허가받은 사업을 실제 발전소로 전환해야 하는 이중 과제가 놓인 셈이다.

 

여기에 전력망과 항만, 설치선박, 금융조달, 주민·어업인 수용성 등 사업 후반부의 변수도 남아 있다. 아무리 개발에 적합한 예비지구를 지정하더라도 전력을 수요지로 보낼 전력망이 제때 확충되지 않으면 발전소 건설 이후 또 다른 병목이 생길 수 있다.

 

정부 역시 지난해 12월 해상풍력 인프라 확충 계획을 통해 항만과 설치선박 등 공급망 기반을 확대하고 올해 6월에는 2026~2035년 해상풍력 입찰 로드맵을 내놓으며 입지부터 사업자 선정, 보급까지의 체계를 구체화하고 있다. 결국 이번 계획입지는 ‘해상풍력을 어디에 지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부가 직접 답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남은 관건은 그 답이 실제 발전소 건설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예비지구가 발전지구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되, 사업자 선정과 착공, 상업운전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가 계획입지 정책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36GW의 발전사업허가 가운데 실제 상업운전에 들어간 물량이 360MW에 그쳤던 지금까지의 간극을 정부가 새 개발 방식으로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