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비상 걸린 용인 반도체 전력 확보.. 곳곳에서 송전망 갈등 불거져

충남 시민단체 장거리 초고압 송전선로 재검토 요구.. 수도권 전력수요 둘러싼 갈등
정부, 전력 공급 시점 11년 앞당겨.. 발전·송전망 확충과 주민 수용성 동시에 풀어야

 

[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장거리 초고압 송전선로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관련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조직화되면서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의 생산시설 조기 가동에 맞춰 정부가 전력 공급 일정을 앞당기면서 송전망 구축의 속도도 빨라져야 하지만 정작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에서의 여론조차 붙잡지 못하면서 자칫 이로 인한 사업 지체만 가중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다.

 

◆ 시작은 10GW 전력수요.. 정부 계획도 계속 앞당겨져
충남 송전탑 백지화 대책위원회 등은 10일 충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와 장거리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들은 충남에 이미 4000개가 넘는 초고압 송전탑이 설치돼 있고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 상당량이 수도권으로 보내지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 충남에서 10개 송전선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며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위해 추가적인 송전 부담을 떠안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내용도 상세히 전해졌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시민단체들은 국가 경쟁력과 첨단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지역의 희생을 전제로 한 전력망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지역에서 필요한 전력을 직접 생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송전선로 입지 선정 과정에도 주민과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요구다.

 

전례에 비추어보면 해당 지역의 반발이 예상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막대한 전력수요가 예정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문제를 생각하면 더 늦출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정부는 2024년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과 일반산단의 생산시설이 모두 가동되는 시점에 10GW 이상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단계적인 공급계획을 마련했다.

 

초기에는 산단 내 발전설비와 인근 송전망을 활용하고 이후 전력수요가 커지는 만큼 기존 전력망의 용량을 늘리고 다른 지역의 발전력을 끌어오는 방식이다. 이후 계획은 더 구체화됐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5월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확정하면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한 대규모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72조8000억원 규모의 전력망 투자를 계획했다. 이 계획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전력수요와 발전설비 전망을 바탕으로 2024~2038년 송·변전설비 구축 방향을 담은 것이다.

 

그런데 반도체 생산시설의 일정이 당겨지면서 전력 공급 시점도 다시 앞당겨졌다. 정부는 지난 7월 22일 용인 반도체 산단의 최종 전력수요 공급 시점을 기존 2053년에서 2042년으로 11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국가산단의 최종 팹 완공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7년, SK하이닉스는 일반산단의 팹 완공 시점을 12년 앞당기기로 한 데 따른 조치다.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들어설 국가산단은 2030년까지 산단 내 LNG 발전과 인근 지역 송전선 보강으로 초기 전력을 공급하고, 2036년까지 기존 송전망 용량을 증설한다. 이후 영동권과 중부권의 발전력을 끌어와 2042년까지 필요한 전력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가 들어서는 일반산단은 올해까지 인근 전력망과 산단을 연결하는 단거리 송전선로를 구축해 내년부터 전력 공급을 시작하고, 2029년까지 산단 내 열병합발전소를 구축한다. 이후 추가 전력수요에 맞춰 2031~2032년까지 송전선로를 조기에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전력망과 도로를 함께 건설하는 방안 등을 활용해 주민 수용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계획보다 빠른 일정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정부의 선택은 그만큼 용인 반도체 전력 공급에서 송전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전력을 모두 산단 안에서 생산할 수 없는 현 구조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초기에는 산단 내 LNG 발전과 인근 송전망 보강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생산시설이 늘어나면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용인으로 가져와야 한다. 결국 발전설비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발전지역과 소비지역을 연결하는 송전망을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송전선로가 발전소처럼 한 곳에만 설치되는 시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십㎞, 길게는 그 이상의 선로가 여러 지역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경과지 선정 과정에서 토지 이용과 환경, 재산권, 주민 생활권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송전망은 발전설비보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동의를 얻는 일이 더욱 중요한 사업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정부도 이 문제를 인정하고 있다. 지난 5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과의 간담회 이후 입지 선정 단계에 있는 전국 27개 송전선로 사업의 입지 선정 절차를 한 달간 보류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미 입지 선정이 끝나 건설에 들어간 사업은 중단하지 않으며 주민들이 제기한 절차상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경과대역을 조정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즉 정부 역시 송전망 확충을 단순히 빨리 건설하면 되는 시설로만 접근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 용인에 전기 보내는 문제가 초래한 지역 갈등과 과제
이번 충남지역 반발에서 주목할 부분도 여기에 있다. 용인은 대표적인 대규모 전력 소비지역이다. 반면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와 향후 확대될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은 수도권 밖에도 상당수 자리 잡는다. 결국 수도권에 산업시설이 집중될수록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충남 시민단체들이 문제 삼는 것도 이 같은 구조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충남에 이미 4000개가 넘는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있고 345㎸ 신규 송전선로 10개 노선이 추가로 계획돼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숫자는 현재 시민단체가 제시한 내용인 만큼 정부나 한전의 공식 통계와는 구분해 살펴볼 필요는 있다.

 

그리고 이런 갈등은 비단 충남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만큼 보다 더 섬세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비근한 일례로 이달 초 대전에서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345㎸ 신계룡~북천안 송전선로 후보 경과지를 둘러싸고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국적으로 용인 반도체 전력 공급을 위한 송전망을 둘러싼 반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연이은 지역의 반대가 당혹스럽지만 정부 입장에서도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본질적으로 반도체는 전력 공급이 늦어지면 생산시설 가동 일정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산업이다. 정부가 7월 전력 공급 완료 시점을 2042년으로 11년 앞당긴 것도 기업들의 생산시설 조기 완공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다.

 

하지만 전력망은 정부가 공급 시점을 정한다고 곧바로 완성되는 시설이 아니다. 송전선로 경과지 선정과 주민 협의, 각종 인허가를 거쳐 실제 건설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최근 제시한 계획에서도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함께 언급된다.

 

SK하이닉스 일반산단의 경우 송전선과 도로를 함께 건설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이를 통해 사업 기간을 줄이는 동시에 주민 수용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전력망 확충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단순히 필요한 송전선로의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산업계가 요구하는 공급 시점을 맞추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을 고려해보면 용인 반도체 전력 확보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송전탑 건설 찬반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대규모 전력이 필요하다는 점과 이를 공급하기 위한 전력망 확충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동시에 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특정 지역에 송전선로가 집중될 경우 해당 지역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도 무시하기 어렵다.

 

특히 앞으로 산업단지와 대규모 전력수요가 수도권에 계속 집중되고, 재생에너지 확대와 발전설비 입지의 지역적 편차가 이어진다면 이런 문제는 용인에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송전망을 지을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전력수요를 배치하고, 어디에서 전력을 생산하며 그 사이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다.

 

정부는 이미 용인 반도체 산단의 전력 공급을 11년 앞당기기로 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시간표에 맞춰 발전설비와 송전망을 실제로 구축할 수 있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의 동의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확보가 산업 경쟁력의 문제라면 송전망 수용성은 그 경쟁력을 뒷받침할 인프라의 현실적인 조건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