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에너지는 뜨거울수록 쓰기 쉽다. 반대로 온도가 내려갈수록 활용하기 까다로워진다. 공장 설비와 데이터센터에서 끊임없이 열이 발생하는데도 상당량이 다시 에너지로 쓰이지 못하는 이유다. 열은 존재하지만 온도가 낮아 활용하기 어려운 이른바 '저온 폐열'이다. 국내 연구진이 이처럼 버려지던 미지근한 열을 냉방에 이용하는 기술의 문턱을 낮췄다.
한국기계연구원(KIMM)은 김영 책임연구원 연구팀이 중앙대학교 김민성·김동규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약 40℃의 저온 폐열을 이용해 냉방할 수 있는 화학흡착식 히트펌프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5일 밝혔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KETEP)의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진행된 연구로 삼정테크가 10kW급 시제품 제작에 참여했다.
◆ 40도 문턱 넘은 냉방 기술.. 세계 최고 수준 성능으로 실용성 확보
이번 성과를 이해하려면 40이라는 숫자를 먼저 볼 필요가 있다. 흡착식 냉방은 열을 이용해 냉방을 만드는 기술이다. 전기를 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냉방 방식과 달리 열에너지를 구동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 장치를 움직이기 위해서도 충분히 높은 온도의 열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기계연에 따르면 기존 흡착식 냉방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70℃ 이상의 열원이 필요했다. 온도가 낮은 폐열은 주변에 있어도 냉방 시스템을 구동하는 에너지로 활용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이 온도의 문턱을 약 40℃까지 낮췄다. 공장과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저온 폐열을 이용해 실제 냉방 운전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현한 것. 기존에는 냉방에 활용하기 어려웠던 온도대의 열까지 에너지원 후보로 끌어들였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40℃라는 숫자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기존 기술보다 30℃ 낮은 온도에서 작동했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냉방을 위해 별도의 고온 열원을 확보하는 대신 산업현장에서 발생하고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저온의 열을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일 가능성을 열었다는데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낮은 온도에서 작동한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냉방 기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열원의 온도가 낮아질수록 충분한 냉방 능력을 확보하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연구진이 흡착베드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 이유다. 흡착베드는 냉매를 흡착하고 방출하면서 냉방 사이클을 만들어내는 화학흡착식 히트펌프의 핵심 부품이다.
기계연 연구팀은 흡착베드를 새롭게 설계해 비냉방능(Specific Cooling Power·SCP) 346.5W/kg을 달성했다. 기계연은 이 수치가 해외 유사 기술보다 2배 이상 높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SCP는 흡착재 단위 질량당 얼마나 큰 냉방 능력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같은 양의 흡착재로 더 많은 냉방을 할 수 있을수록 장치를 작게 만들고 시스템의 성능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따라서 이번 연구의 기술적 성취는 40도에서도 돌아간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낮은 온도의 열을 이용하면서도 실제 냉방 시스템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성능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또 하나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 모터 없는 압축기와 자연냉매의 결합.. 산업 현장의 새 차원 열다
연구진은 냉방 시스템의 또 다른 핵심인 압축기에도 기존과 다른 방식을 적용했다. 중앙대 연구팀이 개발한 전기화학식 압축기다.
일반적인 냉동·히트펌프 시스템의 기계식 압축기는 모터로 압축 장치를 움직여 냉매의 압력을 높인다. 전기화학식 압축기는 이런 기계적인 구동 방식 대신 전기화학 반응과 막을 이용해 냉매를 이동시키고 압력 차를 만든다.
움직이는 기계 부품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소음과 진동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기계연은 이번 시스템이 기존 기계식 압축기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소음과 진동도 거의 발생시키지 않아 병원과 학교, 주거지역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전기화학식 압축기를 히트펌프에 적용하려는 연구는 해외에서도 이어져 왔다. 모터 없는 구조가 갖는 높은 효율과 신뢰성 때문이다. 다만 암모니아 냉매 운전 시 발생하는 역확산 문제와 압력비 한계로 실제 시스템 구현에는 번번이 난항을 겪었다. 이번 연구진이 흡착 베드 기술과 전기화학 압축 기술을 맞물려 실용화 가능성을 끌어올린 배경이다.
그러나 가능성과 상용화는 다른 문제다. 암모니아를 사용하는 전기화학 압축기의 경우 냉매 이동과 압력비 확보, 막을 통한 역확산 등이 성능을 좌우한다. 2024~2025년 관련 연구에서도 역확산에 따른 효율 저하와 높은 압력비 유지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목됐다. 이번 시스템이 흡착베드의 성능 향상과 전기화학 압축 기술을 함께 묶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기술이 겨냥하는 곳은 분명하다. 공장과 데이터센터처럼 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동시에 냉방 수요도 존재하는 공간이다. 특히 데이터센터는 서버를 가동하면서 열을 발생시키는 동시에 그 열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전력을 투입해야 한다. 제조시설 역시 각종 공정과 설비에서 열이 발생한다. 여기서 나오는 저온 폐열을 다시 냉방에 활용할 수 있다면 열을 버리면서 냉방에는 별도의 에너지를 투입하는 구조를 일부 바꿀 가능성이 생긴다.
냉매도 기존 냉방 시스템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연구진은 자연냉매인 암모니아를 적용했다. 기계연은 이를 통해 국제적인 냉매 규제에 대응하면서 친환경 냉난방 시스템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아직 40℃ 폐열 냉방 시대가 열렸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연구진이 현재 시험하는 장치는 10kW급 시제품이다. 실제 공장이나 대형 데이터센터에 적용하려면 장치를 대형화했을 때 성능이 유지되는지, 장시간 운전에서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기존 냉방 시스템과 비교해 경제성이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기계연 연구팀도 현재 10kW급 시제품을 대상으로 실증시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 현장 실증을 거쳐 기술을 고도화하고 상용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