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국내 주거 에너지 시장에도 난방 전기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동안 전기차와 재생에너지가 글로벌 산업 전반의 넷제로(Net Zero) 전환을 주도해 왔다면 이제는 각 가정과 건물의 난방 및 온수 공급 방식이 탄소중립 실현의 새로운 핵심 분수령으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의 주도로 시작된 난방 전기화 바람은 한국 주거 난방의 거대한 체질 개선을 예고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주거 탄소 배출 규제 강화 맞물려 지난 40여 년간 국내 난방 시장을 지배해온 도시가스 보일러 중심 패러다임이 전기를 사용하는 고효율 난방 시스템인 ‘히트펌프’로 대체되는 등 기존 난방 체계가 변화의 기로에 서고 있다.
◆ LG전자, 제주 보급사업 1위 선정, ‘공식 1호 현판식’ 열고 탈탄소 난방 시동
국내 주거 난방 전기화의 첫 시험대가 될 ‘2026년 제주 생활 속 히트펌프 보급사업’이 본격화된 가운데 LG전자가 차별화된 수행 능력을 앞세워 시장 선점에 가장 앞서나가는 모습이다.
LG전자는 제주 지역 전체 보급 물량인 1,042가구 중 가장 많은 450가구의 설치를 전담하는 1위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 이는 전체 사업 물량의 약 43%에 달하는 규모로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하는 대규모 초기 탈탄소 난방 사업에서 가장 큰 공급 경험을 확보하게 됐다.
LG전자는 지난달 31일 제주 제주시 구릉동산길에 위치한 55평 규모 단독주택에서 ‘히트펌프 보급사업 공식 1호 현판식’을 열고 실제 시스템 가동에 들어갔다. 5인 가구가 거주하는 해당 주택에는 LG전자의 대표적인 고효율 일체형 히트펌프 시스템 보일러인 ‘LG 써마브이(LG Therma V) 히트펌프 보일러’가 성공적으로 적용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수주 결과가 단순히 제품 판매 규모가 큰 것을 넘어 주택별 환경에 맞춘 난방 설계 능력, 시공 안정성, 사후관리(A/S) 네트워크 등 종합적인 엔지니어링 수행 역량을 공식 인정받은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히트펌프는 공기 중 열에너지를 끌어와 난방에 활용하는 기술이다. 화석연료를 직접 태우는 기존 보일러와 달리 전력을 이용해 열을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고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소비하는 전기 에너지 대비 생산하는 열에너지 비율을 나타내는 성적계수가 매우 높아 에너지 효율이 극대화된다. 직접적인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배출을 제로 수준으로 줄일 수 있어 글로벌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주거 분야의 핵심 솔루션으로 손꼽힌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주 사업을 단순한 가전·냉난방 기기의 교체 수준이 아닌 국내 화석연료 중심의 주거 에너지 공급체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거대한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 유럽서 검증된 기술력과 생태계, 초기 비용·인프라 과제 극복이 관건
LG전자가 초기 주거 난방 전환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0년 이상 국내외 현장에서 묵묵히 축적해온 R&D 기술력과 사업 노하우가 존재한다. LG전자는 지난 2008년 글로벌 히트펌프 사업에 본격 진출한 이후 2011년 국내 시스템 보일러 사업을 시작하며 한국 특유의 바닥난방(온돌) 문화와 주거 구조에 최적화된 맞춤형 솔루션을 개발해 왔다.
특히 지난 2018년에는 국내 제조사 가운데 유일하게 주거용 일체형 히트펌프 시스템 보일러를 시장에 공급하며 시장 대응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난방 전기화를 가속화한 유럽 시장에서의 대규모 성공 경험이 국내 사업의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LG전자는 프랑스, 스페인 등 남유럽 5개국에서만 이미 10만 가구 이상에 히트펌프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공급했다. 독일에서는 현지 전문 인스톨러(시공업체)와의 협력 네트워크를 촘촘히 구축했고, 영국에서는 대형 전력 공급사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 등 단순 기기 납품을 넘어 설치·유지관리·전력망 연계를 아우르는 글로벌 밸류체인 생태계를 완성했다. LG전자는 이 같은 유럽에서의 검증된 사업 노하우를 국내 주거 환경에 신속히 이식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히트펌프 중심의 난방 전기화가 제주를 넘어 전국 아파트 및 주택 시장으로 본격 확산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경제성이다. 히트펌프는 기존 도시가스 보일러 대비 기기 자체의 가격이 높을 뿐만 아니라 설치 및 배관 공사 비용 부담이 커 초기 보급 단계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보조금 지원책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내 주거 형태의 특수성 극복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비중이 현저히 높은 한국 환경 특성상, 외부 공기열을 수용하기 위한 실외기 배치 공간을 확보하는 한편 기존 바닥 온돌 배관과 히트펌프 간의 매끄러운 기술적 호환성을 확보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아울러 한겨울 난방 전력 수요 급증에 대비해 지역별 전력망 인프라를 한층 확충하고, 난방 전기화 가구가 실질적인 요금 절감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구조를 개편하는 등 제도적 유인책 마련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LG전자 ES사업본부장 이재성 사장은 “유럽 등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입증된 독보적 기술력과 대규모 보급 사업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주거 환경의 탈탄소 전환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일 것”이라며 “이번 제주 보급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국내 히트펌프 난방 시장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친환경 바람을 타고 유럽에서 시작된 난방 전기화의 거센 물결이 제주도를 시작으로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기술력과 전주기 생태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한 LG전자가 주거 에너지 대전환 시대의 주도권을 지속 확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