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력 없으면 팹도 없다" 호남권 반도체 전력망 패스트트랙 총력전

기후에너지환경부, 전남광주통합특별시·한전·삼성·SK 참여 실무협의체 29일 첫 착수회의
송전선로 인허가 병목현상 사전 차단 "팹 완공 시점 맞춰 1단계 전력 적기 공급"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수도권 집중이라는 고질적 한계에 봉착했던 대한민국 반도체 영토가 호남권으로 본격 확장되는 가운데 사업의 최대 성패를 가를 전력 적기 공급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민간 앵커기업이 전격적인 원팀 체제를 가동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 김성환)는 29일 서울 서초구 한강홍수통제소에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한국전력공사, 그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무진이 참석하는 ‘호남권 반도체 산단 전력공급 실무협의체(이하 실무협의체)’ 착수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는 지난 7월 16일 정부와 지자체, 한전이 호남권 반도체 전력공급 1단계 잠정안을 마련한 데 따른 직속 후속 조치다. 단순히 관료적 협의에 그치지 않고 대규모 전력 소비의 당사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관할 지자체와 유역(지방)환경청까지 한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실전형 원스톱(One-Stop) 해결책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 인허가 지연이 최대 적.. 1단계 선로 구축 기간 단축에 총력
반도체 공장(팹·Fab)은 단 한 순간의 전력 단절이나 공급 시차도 허용되지 않는 대표적인 전력 집약형 산업이다. 최첨단 미세공정 팹 1곳이 소비하는 전력은 중소도시 하나 전체의 소비량과 맞먹는다. 그러나 그동안 국내 대형 전력망 구축 사업은 주민 수용성 갈등, 지자체 인허가 지연, 유역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 장기화 등으로 인해 당초 계획보다 수년씩 늦어지기 일쑤였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1단계 공급선로 적기 구축을 위해 '인허가 신속 처리'를 실무협의체의 첫 번째 과제로 내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날 착수회의에서는 산단 인근 1단계 송·변전 설비 구축 사업의 행정 절차를 수개월 이상 앞당기기 위한 기관별 협조 체계가 집중 논의된다. 지자체와 환경청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환경영향평가 및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독소 조항과 병목현상을 사전에 발굴하고 원스톱으로 풀어내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협의체 발족은 단순한 지방 균형 발전을 넘어 국내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전력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과 맞물려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폭발과 첨단 패키징 공정 도입으로 용인·평택 등 기존 수도권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는 이미 한계치에 다다랐다. 수도권으로 대용량 전력을 추가 송전하기 위해서는 동해안-수도권 HVDC(초고압직류송전) 등 초대형 송전망을 계속 증설해야 하지만 지역 간 갈등과 막대한 비용 문제로 계통 한계에 봉착한 상태다.

 

반면 호남권은 국내 최고 수준의 태양광 및 해상풍력 발전 기반을 갖추고 있어 재생에너지 100%(RE100) 달성을 요구받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로 꼽힌다.

 

문제는 아무리 전력 생산 잠재력이 높아도 팹 완공 시점에 맞춰 고압·대용량 전력을 안정적으로 넣어줄 선로가 없으면 그림의 떡이라는 점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번 실무협의체에 전격 합류한 것은 전력망 구축의 확실한 '타임라인'이 담보될 경우 호남권 투자를 가속화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로 해석된다.

 

정부는 향후 실무협의체를 정례 운영하며 사업 진행 상황을 월별·분기별로 밀착 점검하고 돌발 변수 발생 시 즉각 대응하는 '패스트트랙 패키지'를 가동할 방침이다.

 

이원주 기후에너지환경부 에너지전환정책실장은 “이번 실무협의체는 기관 간 보이지 않는 칸막이를 제거해 실질적인 협력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자리”라며, “정부는 호남권 반도체 산단에 전력이 차질 없이 적기에 공급될 수 있도록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모든 역량을 총결집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패권 경쟁의 핵심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팹을 얼마나 빠르게 짓고 전력을 집어넣느냐는 '속도전'에 있다"며 "이번 실무협의체가 지방 첨단 산단 인프라 공급의 성공적 모델을 만든다면, 수도권에 치우쳤던 국내 산업 지도 전체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