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허가를 제한한 지방정부 조치에 제동을 걸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사르데냐 지방정부의 재생에너지 사업 제한을 위헌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문제가 된 사르데냐는 경관 훼손과 무분별한 개발 우려를 이유로 특정 지역에서 태양광·풍력 발전 허가를 막았지만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국가와 유럽연합(EU)의 정책 목표를 고려할 때 일괄적인 제한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번 판결은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지역 환경 보호와 개발 갈등이 커지는 현실을 보여준다. 국가 차원의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와 주민 수용성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이런 고민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해상풍력 사업에서는 어업권 침해와 경관 변화 문제로 갈등이 이어지고 태양광 발전은 농지 활용과 산림 훼손 논란을 반복한다. 제주에서는 송전망 확충이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출력제어가 발생하는 등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기술적·사회적 과제가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결국 이번 이탈리아 판결은 재생에너지 정책이 단순한 설비 증설이나 양적 목표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우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지역 사회와의 소통, 제도적 합의, 기술적 기반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인 것.
이는 해상풍력·태양광 갈등, 송전망 구축 지연, 주민 수용성 문제로 난항을 겪는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에너지 전환의 성패는 발전소 숫자가 아니라 지역 사회가 얼마나 참여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 탄소중립 명분만으로 지역의 희생 강요할 수 없어
다만 이번 판결이 재생에너지 개발을 무조건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환경 보호와 지역 특성을 고려한 개별 심사는 필요하지만 에너지 전환이라는 공익을 이유 없이 막는 방식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무엇보다 이번 사례는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전 세계가 직면한 공통 과제를 보여준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발전 기술과 투자만으로 에너지 전환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발전 시설이 들어서는 지역 주민과 어떻게 합의할 것인지가 핵심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정부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태양광과 풍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사업 현장에서는 주민 반발이 사업 속도를 좌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상풍력은 대표적인 사례다. 대규모 발전이 가능하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어업권 침해, 해양 생태계 영향, 경관 변화 등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태양광 역시 농지 활용과 산림 훼손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단순히 발전소 숫자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송전망 구축과 지역 사회의 동의를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과제임을 보여준다. 결국 한국의 문제도 이탈리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뜻이다.
◆ 주민 합의·격차 해소가 에너지 전환의 첫 관문
유사한 사례가 이어지자 유럽 일부 국가들은 주민 반발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활용하는 식으로 해법을 찾고 있다. 발전사업 수익을 지역사회와 공유하거나 주민이 사업에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재생에너지 시설을 외부 사업자가 가져오는 시설이 아니라 지역 경제의 일부로 만드는 접근이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단순한 민원 보상 중심에서 벗어나 주민이 에너지 전환의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독일과 덴마크는 주민이 발전소 지분을 직접 보유하거나 협동조합 형태로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네덜란드에서는 풍력발전 수익의 일정 비율을 지역사회 기금으로 환원해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한다.
한국의 경우 재생에너지 인허가 과정에서 국가 정책과 지방정부 권한이 충돌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이번 이탈리아 판결은 이러한 제도적 갈등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단순히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발전소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관광·산업 연계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주민 반발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경우 사회적 비용은 더 커진다. 에너지 전환의 속도가 늦어지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제주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송전망 확충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도입은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수 조건이다. 스마트그리드와 분산형 전력망 구축이 병행되지 않으면 발전소 숫자만 늘어나는 양적 확대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 인프라와 제도적 합의가 함께 맞물려야 지속가능한 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정부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현장에서의 갈등은 여전히 정책 추진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탈리아 판결은 재생에너지 확대는 국가적·국제적 공익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지역 사회와의 합의 구조가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한국 역시 단순한 보상에서 벗어나 주민이 에너지 전환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수차례 반복했듯 재생에너지 확대의 마지막 관문은 기술이나 비용만이 아니다. 그에 앞서 지역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에너지 전환의 성패를 좌우하는 첩경임을 명심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