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넘치는 태양광에 무료 전기요금제 도입한 호주의 파격실험

태양광 발전 급증에 한낮 3시간 무료 공급 통 큰 결단
재생에너지 확대가 바꾸는 전력시장, 한국도 시사점 다분

 

[엔트로피타임즈 김재영 기자] 호주에서 최근 등장한 새로운 전기요금제가 에너지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기를 무료로 제공하는 새로운 전기요금제가 그것이다. 하루 중 특정 시간대 전기요금이 할인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무료이기 때문이다.

 

대상 시간은 태양광 발전량이 최고조에 이르는 한낮 3시간에 국한되는데 이는 전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면서 남아도는 전기를 소비자에게 적극 사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시장 실험이다.

 

태양광과 풍력 보급이 늘어나면서 낮 시간대 전력이 남아도는 경우가 생기지만 저녁 시간대에는 여전히 수요가 집중되는 한국이 관심을 가질 만한 실험이다. 물론 한국 정부도 유사한 정책 도입으로 고민 해결에 나서고는 있다.

 

정부와 업계는 ‘시간대별 요금제’와 ‘에너지 저장장치(ESS)’ 확대를 통해 수요를 분산하고 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이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다. 최근에는 전기차 충전을 낮 시간대에 유도하는 요금제 실험도 진행되며 재생에너지 활용을 극대화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본격적인 제도화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전력망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요금 설계가 필요하고, ESS 투자 확대와 함께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도 병행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호주의 무료 전기요금제 실험은 재생에너지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한국도 제도적 뒷받침과 기술 투자를 통해 유사한 모델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 발전소 멈추느니 무료라도 쓰게 하는 것이 이득?
국제태양에너지학회(이하 ISES)는 지난 17일(현지시간) 태양광 전문매체 ‘pv magazine’에 기고한 칼럼에서 호주가 잉여 태양광 전력을 버리는 대신 소비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솔라 셰어러(Solar Sharer)' 요금제를 도입하며 재생에너지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력시장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칼럼은 단순히 전기를 공짜로 준다는 이색적인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산업의 중심 과제가 발전량 확대에서 잉여전력의 저장과 활용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전력산업의 역사적 흐름과 대비된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전력산업은 언제나 전기가 부족하다는 가정 아래 발전해왔다. 때문에 수요가 늘어나면 발전소를 짓고 송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해법이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전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태양광 발전이다.

 

태양광 발전은 햇빛이 가장 강한 낮 12시 전후에 발전량이 집중되지만 전력 소비는 출근 시간과 저녁 시간대에 몰린다. 발전과 소비의 시간대가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태양광 보급률이 높은 국가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호주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호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분산형 태양광 보급 국가에 해당된다. ISES에 따르면 현재 전체 주택의 약 40%가 지붕형 태양광을 설치하고 있으며, 인구 대비 태양광 발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럽연합(EU), 미국, 중국보다도 1인당 태양광 발전량이 훨씬 많다.

 

그 결과 맑은 날 한낮에는 전력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전기를 저장하지 못하면 발전량을 줄이거나 버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전력시장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크게 웃돌 경우 도매가격이 0원을 넘어 마이너스까지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어 이를 증명한다. 애써 만든 전기를 허공에 날리는 셈인데 이것이 바람직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솔라 셰어러(Solar Sharer)' 요금제다. ISES에 따르면 해당 요금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하루 3시간 동안 최대 24kWh의 전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소비자는 이 시간에 식기세척기, 세탁기, 건조기, 전기온수기 등을 가동하거나 전기차(EV), 가정용 ESS를 충전할 수 있다.

 

핵심은 소비 패턴을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로 옮기는 것이다. 발전소를 강제로 멈추는 것보다 소비를 늘리는 편이 전력계통 운영 측면에서도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과거에는 소비자가 전기를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이 당연했다면 앞으로는 전기를 언제 사용하느냐가 전력시장 운영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는 셈이다.

 

◆ 전력의 유연성 확보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라
이 같은 변화는 호주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미 '덕 커브(Duck Curve)' 현상이 전력시장의 대표적인 과제로 자리 잡았다.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는 낮에는 전력이 남아돌지만, 해가 지면 발전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전력 수급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는 현상이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 스페인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 확대에 따라 도매 전력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시간이 점차 늘고 있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될수록 잉여전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세계 전력시장의 공통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각국은 대규모 ESS, 수요반응, 시간대별 요금제, 스마트 충전 등을 동시에 확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보급 초기에는 발전설비를 얼마나 많이 설치할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전력의 유연성 확보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잉여전력을 저장해 필요한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이러한 변화의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ISES도 호주 사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로 배터리 저장장치 확대를 제시했다. 현재 호주는 세계 3위 규모의 배터리 시장으로 성장했으며 가정용 ESS 보급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실제 가정용 배터리 보급률은 지난 1년 새 3%에서 6%로 두 배 증가했다.

 

호주는 배터리뿐 아니라 다양한 전력 저장수단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차다. 전기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잉여전력을 저장하는 '이동형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주목받고 있다.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에 충전한 뒤, 향후 V2G(Vehicle-to-Grid) 기술이 본격화되면 필요할 때 저장된 전력을 다시 전력계통에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호주 정부는 350GWh 규모의 양수발전 프로젝트인 'Snowy 2.0'도 추진 중이다. 이는 전기차 약 700만 대의 배터리 저장용량에 맞먹는 규모로,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대규모 저장 인프라 구축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은 아직 호주 수준의 재생에너지 비중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이미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급증하면서 계통 안정을 위해 발전을 강제로 멈추는 출력제한이 반복되고 있다. 호남권에서도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가 송전망 확충을 앞지르면서 계통 포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다.

 

이는 호주가 먼저 겪고 있는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국내에서도 ESS 확대, 스마트 충전, 시간대별 요금제 개편 등이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ISES 칼럼은 "호주의 가장 큰 교훈은 시장 혁신과 적절한 정책이 결합될 경우 태양광을 낮은 비용으로 대규모 보급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무료 전기 요금제는 단순한 마케팅 이벤트가 아니다. 재생에너지 시대에는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것보다 남는 전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활용하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호주의 '무료 전기' 실험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례다. 세계 전력시장은 서서히 '전기가 부족한 시대'를 지나 '전기가 남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으며 에너지 정책의 중심도 발전설비 확충에서 전력의 유연한 활용으로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