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中, AI 기술 빗장 건다.. 반도체 패권전 2라운드 돌입

반도체 이어 AI 알고리즘까지 전략자산 관리 나서는 진짜 이유는?
중국과 연결고리 많은 한국 반도체·AI 기업도 영향 불가피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중국 정부가 인공지능 모델과 반도체 기술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규정하고 수출통제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이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와 첨단 장비 수출을 제한하며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는 가운데 나온 대응 조치로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반도체 하드웨어를 넘어 AI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 영역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글로벌 인공지능 산업의 리더격인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글로벌 공급망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뿐 아니라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과 네이버·카카오 등 AI 기반 서비스 기업에도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 미·중 기술전, 반도체 넘어 AI로 확전 양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이하 FT)는 21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상무부가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즈푸AI 등 주요 AI 기업들과 함께 새로운 통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와 첨단 장비 수출을 제한하며 중국의 AI 경쟁력 확보를 견제해온 데 대한 맞대응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 기업들의 해외 전략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게 FT의 분석이다. 기본적으로 해외 진출이 제약될 경우 내수 시장 중심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고 정부 주도의 자급자족형 생태계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을 통해 성장해온 스타트업들은 투자 유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결국 중국 내 AI 산업은 더 폐쇄적이고 국가 주도적인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 시장 구도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만큼 중국 내부의 변화는 곧바로 글로벌 공급망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그것이 긍정적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우선 중국 시장 비중이 큰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의 통제 범위에 따라 매출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동시에 해외 연구기관이나 기업이 중국산 AI 모델을 활용하는 데 제약이 생기면 국제 공동 연구와 기술 교류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AI 모델은 대규모 데이터 학습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데이터와 모델의 해외 이전이 제한되면 글로벌 AI 발전 속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FT는 이번 검토가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응하려는 성격이 강하다고 짚었다. 실제로 미국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와 첨단 제조장비 수출을 제한하며 중국의 AI 경쟁력 확보를 견제해왔다. 이에 따라 미국은 추가 규제를 검토할 가능성이 크고, 유럽·일본 등도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각국이 AI를 전략자산으로 규정하고 통제에 나서면 국제 AI 규제 경쟁이 본격화될 수 있으며, 이는 WTO 규범이나 글로벌 협력 체계에도 새로운 긴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 글로벌 공급망 재편 우려.. 국내 기업도 영향권
이러한 흐름은 한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은 반도체와 AI 모두에서 중국과 긴밀한 공급망을 공유하고 있기에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중국은 최대 수요처 중 하나이며, AI 학습용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에서도 중국 기업과 협력하는 사례가 많다. 따라서 중국이 AI 모델과 반도체 기술을 전략자산으로 묶어 수출을 제한할 경우 한국 기업들은 중국 내 사업 확장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 산업의 거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생산시설과 고객 비중이 크기에 그 파급력은 더 클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공장에서 대규모 D램을 생산하고 있어 중국의 규제 강화가 생산·수출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뿐 아니라 스마트폰·가전 등 다양한 사업에서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재편에 따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삼성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기술 협력과 시장 접근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다.

 

긴장감이 증폭되는 면에서는 ICT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AI 기반 서비스 개발 과정에서 중국산 모델이나 데이터 활용을 검토해온 바 있는데, 규제가 강화되면 글로벌 서비스 확장에 제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 역시 골머리를 앓을 가능성이 크다. 카카오의 콘텐츠·플랫폼 사업은 중국과의 협력 비중이 적지 않아 라이선스 문제와 데이터 이전 절차가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다. 네이버 역시 클라우드와 검색·번역 서비스에서 중국 기업과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해왔는데 규제 강화는 이러한 전략을 다시 조정하게 만들 수 있다.

 

반도체 장비·소재 기업들도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중국이 자국 내 반도체 기술을 보호하는 동시에 해외 기술 유입을 제한하면 한국 기업들의 대중 수출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소재 분야에서 중국은 여전히 한국 기업의 주요 고객이지만 규제가 강화되면 일본·미국 등 다른 시장으로의 다변화가 필요해진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의 규제 강화는 단기적으로 한국 기업에 불확실성을 높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유럽 등 다른 시장으로 다변화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파급력이 예상된다. AI 모델을 활용해 글로벌 서비스를 개발하는 한국 스타트업들은 중국산 모델을 도입하거나 협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규제 강화는 이들의 성장 경로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데이터 이전과 알고리즘 활용에 제약이 생기면 한국 스타트업들은 미국·유럽 기업과의 협력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학계와 연구기관에도 여파가 예상된다. 한국 대학과 연구소는 중국과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중국산 AI 모델을 활용해 논문을 발표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규제 강화는 국제 공동 연구의 범위를 좁히고 연구 성과 공유에도 제약을 줄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산업계뿐 아니라 학문적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한 국제정치학자는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며 “중국의 이번 움직임은 반도체에 이어 AI까지 ‘안보화’하는 흐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산업계에서는 중국의 규제가 본격화될 경우 글로벌 AI·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