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출국세 3배 인상에 담긴 일본의 관광 대전환 의지

세제개편으로 출국세 1000엔에서 3000엔으로 인상
한국인 관광객도 동일 적용.. 오버투어리즘 대응 위한 재원 확보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일본 여행을 계획하는 국내 여행객이라면 앞으로 예산을 조금 더 늘려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7월 1일부터 '국제관광여객세'라고 부르는 출국세를 3배로 올렸기 때문이다. 출국세는 일본을 항공기나 선박으로 출국하는 모든 여행객에게 적용되는 만큼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도 예외 없이 같은 금액을 부담하게 된다.

 

이같은 변화는 일본 정부가 2026회계연도 세제개편안을 통해 출국세를 현행 1000엔에서 3000엔으로 인상하기로 한데 따른 결과다. 다만 여행업계는 이번 인상이 일본 여행 수요를 크게 위축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출국세는 대부분 항공권 가격에 포함돼 부과되는 데다 전체 여행 경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외 언론은 이번 조치를 단순한 증세가 아닌 일본 관광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상징적인 결정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확보되는 세수를 공항과 항만시설 개선, 지방 관광 활성화, 다국어 안내 시스템 구축, 관광객 분산 정책 등에 투입할 계획이다. 일본 매체 ‘저팬 투데이’는 이번 정책을 "관광객 숫자보다 지속 가능한 관광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라고 분석했고, 여행 전문매체 ‘트래블 보이스 저팬’도 관광 인프라 투자 확대가 핵심 목적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영향이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일본은 지난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은 해외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엔화 약세와 항공 노선 확대에 힘입어 일본 여행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출국세 인상은 국내 여행객들에게도 적지 않은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늘어난 관광객에 불편해진 주민들의 삶 들여다보는 일본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일본의 관광정책은 명확했다. 가능한 한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런 영향으로 2013년 연간 약 1000만 명 수준이던 외국인 관광객은 비자 완화와 저비용항공(LCC) 확대, 엔화 약세 등의 영향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연간 3000만 명을 넘어섰고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회복되면서 일본은 다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국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 관광산업은 일본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숙박업과 외식업, 백화점과 면세점, 철도와 항공업계는 물론 지방 도시들까지 관광객 소비 효과를 누렸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은 외국인 관광객 소비가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성장동력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객 증가의 이면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도 함께 자리잡았다. 대표적인 곳이 교토다.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된 교토는 출퇴근 시간 시내버스가 여행객들의 대형 캐리어로 가득 차 주민들이 이용에 불편을 겪는 일이 일상이 됐다. 사진 촬영을 위해 사유지에 무단으로 들어가거나 골목길을 점거하는 사례도 반복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졌다.

 

후지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산객이 급증하면서 쓰레기 투기와 불법 야영, 등산로 훼손 문제가 심각해졌고 구조 요청도 크게 늘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는 등산료를 인상하고 예약제와 입산 제한을 확대하는 등 관리 수위를 높였다.

 

이처럼 관광객 증가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지만 주민들의 삶에는 부담을 안겼다. 일본 사회에서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과잉관광)'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이유다.

 

2019년 처음 도입된 국제관광여객세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탄생했다. 당시에는 1000엔으로 시작했지만 일본 정부는 관광객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함께 늘어난 만큼 보다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인상이 이뤄진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인상으로 확보되는 세수를 공항과 항만시설 개선, 지방 관광지 육성, 문화유산 보존, 다국어 안내체계 확충, 혼잡 관광지 관리 등에 활용함으로써 관광 산업의 질적 향상을 꾀할 것으로 점쳐진다. 

 

◆ 양보다는 질.. 일본이 선택한 새로운 성장 전략
이번 출국세 인상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세금 자체보다 일본이 관광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다. 과거에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정책 성과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였다. 관광객이 많이 올수록 성공한 정책으로 평가받은 이유다.

 

하지만 이제 일본 정부는 숫자보다 '질'을 이야기한다. 관광산업에서는 이를 '고부가가치 관광' 전략이라고 부른다. 관광객 수를 무작정 늘리기보다 체류 기간이 길고 소비 규모가 크며 지역사회와 조화를 이루는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개념이다.

 

출국세 인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행객 한 사람에게 수천 엔의 부담을 더 지우더라도 확보한 재원을 다시 관광환경 개선에 투자하면 관광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전문가들은 3000엔의 출국세가 일본 여행 수요를 크게 위축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여행 전체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고 쾌적한 관광환경 조성을 위한 투자라는 점에서 여행객들의 수용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이런 변화는 세계적인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프랑스 파리는 숙박세를 꾸준히 조정하며 관광객 증가에 대응하고 있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당일치기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역시 관광세를 인상하며 지역 주민들의 생활환경 보호에 나서고 있다. 세계 주요 관광도시들이 관광객 유치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주민과 관광객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도 관광객을 도쿄와 교토, 오사카 등 특정 지역에 집중시키는 대신 홋카이도와 도호쿠, 규슈 등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혼잡도 예측 시스템과 실시간 관광객 관리 체계 구축도 추진 중이다.

 

물론 출국세 인상만으로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관광 인프라 확충과 교통체계 개선, 지역 관광 콘텐츠 개발 등이 함께 이뤄져야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번 조치는 일본 관광정책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관광객을 얼마나 많이 유치할 것인가보다 어떤 관광객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한국인에게 일본은 가장 가까운 해외여행지이자 가장 익숙한 관광지다. 앞으로 일본 여행 경비는 지금보다 조금 늘어나겠지만 일본이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은 관광객이 아니라 더 오래 머물고 지역경제와 함께 성장하는 여행이다. 결국 일본의 출국세 3000엔에는 관광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려는 일본의 새로운 계산법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