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유럽연합(EU)이 중국발 초저가 온라인 쇼핑 플랫폼을 겨냥한 새로운 통관 규제를 시행하면서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의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앞서 중국발 저가 수입품에 대한 면세 혜택을 폐지한 데 이어 유럽까지 규제 대열에 합류하면서, 테무(Temu)와 쉬인(Shein),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를 앞세운 중국 플랫폼의 성장 전략에도 적잖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사실상 테무·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플랫폼 정조준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이날부터 역외에서 반입되는 저가 전자상거래 상품에 대해 건당 3유로의 통관 수수료를 부과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유럽으로 직접 배송되는 저가 상품에 적용되는 이번 조치는 급증하는 해외 직구 물량에 대응하고 소비자 안전과 역내 기업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라고 EU는 설명했다.
이번 제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기업으로는 중국계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테무와 쉬인, 알리익스프레스가 꼽힌다. 이들 기업은 중국 생산기지에서 유럽 소비자에게 상품을 직접 배송하는 방식으로 유통 단계를 최소화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수천 원대 생활용품과 의류, 액세서리 등을 앞세운 초저가 전략은 유럽은 물론 한국과 미국 시장에서도 빠르게 이용자를 늘리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유럽은 이러한 성장 방식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로이터통신은 EU로 반입된 150유로 이하 전자상거래 소포가 2022년 약 14억 개에서 2025년에는 약 58억 개로 4배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하루 평균 약 1600만 개에 달하는 물량이 유럽 세관을 통과하는 셈이다. 특히 전체 물량의 약 90%가 중국에서 발송된 것으로 집계됐다.
급증한 물량은 세관의 통관 부담뿐 아니라 시장 질서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 현지 유통업체들은 "역내 기업은 각종 세금과 규제를 부담하는 반면 해외 플랫폼은 사실상 면세 혜택을 누리며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다.
여기에 일부 해외 직구 제품에서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보호 필요성도 커졌다. EU는 장난감과 전기용품, 화장품 등 일부 품목에서 안전 기준 미달 제품이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초저가 상품이 대량으로 유입되는 현행 구조로는 효과적인 관리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조치가 단순한 통관 절차 변경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은 단순히 세수를 늘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급속도로 성장한 중국 플랫폼 중심의 전자상거래 구조 자체를 손질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이번 수수료는 오는 2028년 예정된 EU 관세제도 개편 전까지 적용되는 과도기적 조치다. EU는 현재 150유로 이하 상품에 적용되는 관세 면제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편안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저가 직구 상품도 일반 수입품과 동일한 관세 체계의 적용을 받게 된다.
업계는 이번 조치가 테무와 쉬인의 핵심 경쟁력인 초저가 전략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상품 가격 자체가 워낙 낮아 배송비를 포함하더라도 현지 유통업체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통관 비용이 추가되면 플랫폼이 비용을 자체 부담하지 않는 이상 소비자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테무는 최근 유럽 시장에서 공격적인 할인 행사와 무료 배송을 앞세워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해 왔다. 쉬인 역시 초저가 패스트패션 전략으로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키웠다. 여기에 알리익스프레스까지 가세하면서 유럽 소매업계의 위기감은 더욱 커졌고, 결국 규제 강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만으로 중국 플랫폼의 성장세가 꺾일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이들 기업은 이미 유럽 현지 물류센터를 확대하거나 배송 체계를 개편하는 방식으로 규제에 대응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로이터통신은 쉬인이 유럽 내 물류망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알리익스프레스는 소비자가 추가 비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가격 표시 방식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 시장 장악력 높아진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은
미국이 이미 같은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했다는 점도 이번 EU 조치의 의미를 키운다. 미국은 올해 중국발 저가 수입품에 적용해온 '디 미니미스(de minimis)' 면세 제도를 폐지했다. 이 제도는 일정 금액 이하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면제하는 장치로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미국 정부는 제도 폐지 배경으로 급증하는 중국발 소포 물량과 통관 관리 부담, 불법·위조 상품 유입, 공정 경쟁 저해 등을 제시했다. 여기에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중국 기업에 대한 견제 의도도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EU 역시 이번 조치를 단순한 세수 확보 정책이 아니라 전자상거래 질서를 재편하는 첫 단계로 보고 있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현행 통관 체계가 수십억 건에 달하는 소액 직구 물량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2028년부터는 150유로 이하 상품에 대한 기존 관세 면제 제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EU가 잇달아 규제에 나서면서 '초저가 직구 시대'를 뒷받침해온 제도적 기반이 약화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국 플랫폼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이번 변화는 결코 가볍지 않다. 테무는 2022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공격적인 할인과 무료 배송, 대규모 광고를 앞세워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이용자를 빠르게 확보했다. 쉬인 역시 초저가 패스트패션을 앞세워 글로벌 의류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웠고 알리익스프레스는 생활용품과 전자제품을 중심으로 이용층을 넓혀 왔다.
세 플랫폼의 공통점은 중국 생산기지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상품을 배송하는 구조다. 중간 유통 단계를 최소화해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고 관세 면제 제도와 결합하면서 기존 유통업체가 따라오기 어려운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이 잇달아 제도 손질에 나서면서 이 같은 사업 모델도 변화를 요구받게 됐다.
업계에서는 중국 플랫폼들이 당장 가격을 크게 올리기보다는 현지 물류망 확대와 배송 체계 개선을 통해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유럽 현지 창고를 늘려 역내 배송 비중을 높이거나 판매자 수수료 조정과 물류 효율화로 추가 비용을 흡수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같은 전략은 비용 증가를 피하기 어려워 과거와 같은 초저가 공세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시장도 이번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도 테무와 알리익스프레스, 쉬인은 최근 몇 년 사이 이용자가 크게 늘었다. 특히 생활용품과 의류, 주방용품, 소형 전자제품 등을 중심으로 해외 직구 수요가 확대되면서 국내 유통업체와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중국 직구 제품의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가 일부 품목의 안전 관리 강화를 추진한 바 있다. 당시 소비자 안전과 KC 인증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고 해외 직구 규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확대됐다. 다만 소비자 반발 등을 고려해 일부 방안은 조정됐다.
이 때문에 미국과 EU의 잇단 규제가 곧바로 한국의 제도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국은 소비자 선택권과 물가 안정, 통상 문제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주요 시장이 저가 직구에 대한 관리 강화에 나선 만큼 국내에서도 소비자 안전과 공정 경쟁을 중심으로 제도 개선 논의가 다시 힘을 받을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