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SMR 상용화 두고 공방 과열 “선발주 허용 필요” vs “리스크 확대 우려”

9월 SMR 특별법 시행 앞두고 제도 개선 요구
업계 “2035년 상용화 위해 생산 앞당겨야” 강력 주장

 

[엔트로피타임즈 김재영 기자] 정부가 오는 9월 소형모듈원자로(SMR)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제도 정비를 추진하는 가운데 원전 업계가 핵심 기자재에 대한 '선제 제작(선발주)' 허용을 요구하면서 이를 둘러싼 공방이 과열되고 있다. 업계는 글로벌 경쟁 대응과 공급망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인허가 이전 생산을 허용할 경우 사업 리스크와 비용 부담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이번 논의는 단순한 규제 완화 차원을 넘어 원전 산업의 투자 방식과 공급망 유지, 국가 에너지 전략까지 맞물린 사안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가 2035년 SMR 상용화를 목표로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산업계는 생산 일정에 맞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2035년 SMR 목표 속도전, 선발주 허용이 새 쟁점
지난 6월 30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는 '대한민국 SMR 경쟁력 확보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는 원전 업계와 학계,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해 SMR 산업 경쟁력 확보 방안과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업계는 정부가 제시한 2035년 SMR 상용화 목표를 달성하려면 최소 2028년부터 기자재 제작이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로 제작부터 설치, 시운전까지 통상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만큼 생산 일정을 앞당기지 않으면 상용화 목표를 맞추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과 달리 주요 설비를 공장에서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형 방식을 적용한다. 업계는 설계가 완료된 이후 생산 체계로 전환되는 시점이 늦어질 경우 전체 사업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유성원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BG 상무는 토론회에서 "SMR은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첨단 제조기술, 수출 산업을 동시에 견인할 수 있는 분야"라며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현재 미국 뉴스케일과 엑스에너지, 테라파워 등 글로벌 SMR 개발사와 협력하며 기술 개발과 제조 역량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는 기술 경쟁력뿐 아니라 생산 체계 구축 속도도 글로벌 시장 선점의 핵심 요소라고 보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SMR 사업 초기 투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 필요성도 제기됐다. 일부 참석자들은 전력구매계약(PPA) 제도 도입과 금융·세제 지원 확대가 병행돼야 상용화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원전업계 "SMR 선발주 허용해야" 특별법 앞두고 제도 개선 요구
업계 요구의 핵심은 선발주 허용이다. 선발주는 정부의 건설계획 확정이나 인허가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에 원자로 용기와 증기발생기 등 제작 기간이 긴 핵심 기자재를 미리 생산하는 방식을 말한다. 제작에 수년이 걸리는 기자재 특성상 사업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업 계획이 변경되거나 취소될 경우 비용 부담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정부의 건설계획 확정과 인허가 절차 완료 이후에만 주요 기자재 제작이 가능하다. 안전성과 정책 실패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다. 업계는 이 같은 구조가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는 속도 측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해외 SMR 시장이 국가 단위 경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인허가 이후 제작에 착수해서는 시장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등 SMR 개발 경쟁이 치열한 국가들은 정부 지원 아래 설계 인증과 실증사업을 병행하며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는 국내도 생산 준비 시점을 앞당길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인허가 이전 단계에서 대규모 기자재 제작을 허용할 경우 사업 지연이나 설계 변경, 프로젝트 취소 등이 발생했을 때 비용 부담이 불명확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 시점이 앞당겨지는 만큼 사업 리스크도 함께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 승인 이전 단계에서 생산이 확대될 경우 산업 전반의 투자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선발주 확대가 단기적으로는 공급망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과잉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또 다른 근거로 원전 산업의 생산 공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대형 원전 사업이 2037년 전후 마무리되는 반면 SMR 상용화는 2035년으로 예정돼 있어 약 6년의 물량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기간 동안 두산에너빌리티를 포함한 약 460개 협력업체의 수주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원전 산업은 대형 기자재 제작과 장기 프로젝트 중심의 공급망 구조를 갖고 있어 물량 공백이 발생하면 협력업체와 숙련 인력 유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원전 산업은 대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만큼 일정 수준의 수요 공백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따라 공급망 유지를 위해 선발주를 제도화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오는 9월 시행되는 SMR 특별법을 토대로 연구개발 지원과 상용화 기반 구축, 규제 개선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선발주 허용 범위와 투자 리스크 분담 구조 등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토론회에서도 특별법 시행 이후 후속 제도 마련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선발주 허용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SMR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선발주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의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업계가 요구하는 생산 일정 단축과 정부가 강조하는 안전성·절차 사이에서 어느 수준의 제도 개선이 이뤄질지가 향후 SMR 상용화 정책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 이것이 SMR 특별법.. 상용화 지원 첫 법적 기반
오는 9월 시행되는 SMR 특별법은 소형모듈원자로의 연구개발부터 실증, 상용화까지 국가 차원의 지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제정됐다.

 

법안에는 연구개발(R&D) 지원과 실증사업 추진, 전문인력 양성, 산업 생태계 육성, 규제 개선 등을 위한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특별법을 토대로 SMR을 차세대 원전 수출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업계가 요구하는 선발주 허용이나 투자 리스크 분담 방식 등은 법률에 직접 규정된 사항이 아니다. 향후 시행령과 정부의 후속 제도 설계 과정에서 구체적인 지원 범위가 결정될 전망이다. 업계는 특별법 시행을 계기로 상용화 일정에 맞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안전성과 사업성 검증을 전제로 단계적으로 지원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