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대만해협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드론 기업들이 일본과 대만 시장 진출에 본격 나서면서 아시아 안보 지형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축적된 실전 경험이 유럽을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움직임을 단순한 방산 수출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만들어낸 새로운 전쟁 방식이 아시아 안보 전략에 이식되는 과정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제통신사 로이터는 지난 19일 우크라이나 공격용 드론 제조사 유포스(UFORCE)와 정찰 드론 업체 스카이에톤(Skyeton), 자폭 드론 개발사 제너럴 체리(General Cherry) 등이 일본 기업 및 정부 관계자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단순 판매를 넘어 일본 내 생산시설 구축과 공동개발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이 이들 기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무기체계를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본 방위 당국이 관심을 갖는 것은 드론이라는 장비 자체보다 우크라이나가 지난 4년간 전장에서 축적한 실전 경험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세계 최대 규모의 드론 전장이 됐다. 전쟁 초기만 해도 드론은 정찰과 감시를 지원하는 보조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공격과 방어, 전자전, 해상작전 등 전장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저가형 FPV 드론이 수백만 달러 규모의 전차와 장갑차를 무력화하는 장면은 현대전의 개념 자체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 주요 안보 연구기관들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 군대가 가장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드론 운용 체계와 전자전 대응 능력이라고 분석했다. 전차와 전투기 중심으로 발전해온 군사 교리가 무인체계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일본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드론 생산 확대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방위 관련 예산 가운데 상당 부분을 무인체계 전력 강화에 배정했으며, 현재 연간 수천 대 수준인 생산 능력을 향후 수만 대 규모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무인체계를 미래 전장의 핵심 요소로 규정하고 관련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미래 전쟁의 예행연습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대만해협, 우크라이나 전쟁의 다음 시험대 되나
우크라이나 드론 기업들의 일본 진출 움직임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대만해협 때문이다. 그간 일본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동아시아에 중요한 경고를 던졌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 중국이 대만에 대해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을 대만해협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일본 정부는 최근 수년간 안보 정책을 대폭 수정해 왔다.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까지 확대하고 반격 능력 확보를 추진하는 한편 무기 수출 규제도 단계적으로 완화했다. 이는 전후 일본 안보 정책의 가장 큰 변화로 평가된다.
미국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된 드론 전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특히 흑해에서 활용된 해상 무인정 작전은 대만해협 유사시 적용 가능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우크라이나는 상대적으로 열세인 해군 전력에도 불구하고 무인정을 활용해 러시아 흑해함대를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군사전문지들과 싱크탱크들은 이러한 전술이 대만 방어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군이 상륙작전을 시도할 경우 수천 대의 드론과 무인정을 활용해 병력 이동을 지연시키고 대응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뮤얼 퍼파로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은 지난해 공개 석상에서 대만 유사시 대규모 무인체계를 활용하는 이른바 ‘무인 지옥(Unmanned Hellscape)’ 개념을 언급한 바 있다. 유사시 대만해협을 드론과 무인정으로 가득 채워 중국군의 작전 수행을 어렵게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드론 기업들의 일본·대만 진출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검증된 전술과 기술이 대만해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안보 체계 구축에 활용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일본뿐 아니라 대만과 필리핀, 호주 등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이터는 올해 초 미국 드론 기업들이 아시아 각국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영업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는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가 새로운 형태의 무인전력 경쟁에 돌입했음을 의미한다.
◆ 드론 시장 절대 강자 중국 견제는 안보 차원의 과제
이번 움직임이 가진 또 다른 의미는 공급망에 있다. 현재 세계 드론 산업은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민간 드론 시장은 물론 군사용 드론 산업에서도 중국산 부품 비중이 절대적이다. 배터리와 모터, 카메라, 센서, 통신모듈 등 핵심 부품 상당수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이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 중 하나다. 전쟁이나 외교 갈등이 발생할 경우 공급망이 무기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희토류와 핵심 광물, 첨단 소재 등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온 전례가 있다. 드론 산업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역시 전쟁 과정에서 같은 문제를 경험했다. 전쟁 초기에는 중국산 부품 의존도가 높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공급망 다변화가 국가 안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최근 대만 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달 우크라이나와 대만 기업들이 드론용 전자부품과 공급망 구축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만은 반도체와 전자부품 분야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어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우크라이나에 중요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현재 진행되는 경쟁은 단순히 드론을 많이 생산하는 국가가 누구냐의 문제가 아니다. 실전 경험을 가진 우크라이나, 생산 능력을 갖춘 일본, 첨단 전자산업 기반을 가진 대만이 협력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형성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한국은 K9 자주포와 FA-50, 천무 다연장로켓 등 전통적 무기체계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드론 분야에서는 아직 세계 시장을 주도한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세계 주요국들은 전차와 전투기 증강보다 드론 전력 확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방산업계에서는 앞으로 10년이 ‘드론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냉전 시기 전투기 보유 대수가 군사력의 척도였다면 미래에는 얼마나 많은 무인체계를 생산하고 운용할 수 있는지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드론 기업들의 일본·대만 진출 시도는 단순한 해외시장 개척이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만들어낸 새로운 군사 패러다임이 아시아로 이동하는 과정이자, 대만해협을 둘러싼 안보 경쟁이 이미 산업과 공급망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유럽 전장의 경험이 아시아의 미래 전쟁을 준비하는 교본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