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황상규 칼럼니스트]
봄이면 만물이 소생하고, 초여름이 되면 세상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겨우내 메말라 보이던 나뭇가지 끝에서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고, 산은 어느새 푸른 물결로 출렁인다. 봄꽃이 화려한 축제였다면 ‘신록’(新綠)은 본격적인 생명의 시작이다. 꽃이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라면 신록은 몸으로 느끼는 생명력이다.
아름다운 수필, 신록예찬
이맘때가 되면 이양하 선생의 「신록예찬」이 자연스레 생각난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읽었던 그 아름다운 글은 오랫동안 필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당시에는 단순히 문장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글이 단순한 자연 예찬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신록예찬」은 나무를 이야기하면서 생명을 말하고, 숲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글이다.
신록은 참으로 신비롭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던 나무가 어느새 초록빛 잎을 가득 달고 있다. 죽은 듯 보였던 숲이 다시 살아난다. 겨울의 침묵을 견디어 낸 나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새 생명을 틔워 내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
삶이 힘들고 세상이 어둡게 느껴질 때에도 신록은 우리에게 말한다. 생명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고. 겨울은 영원하지 않으며 봄은 반드시 찾아온다고.
신록이 오는 길
그렇게 매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면서 오랫동안 신록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신록예찬을 읽어 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신록 자체보다 신록을 가능하게 하는 힘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저 푸른 잎은 어디에서 왔을까. 무엇이 나무를 다시 살아나게 했을까. 무엇이 산을 푸르게 물들였을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흙 속 미생물들이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유이겠지만, 그 모든 생명의 근원에 태양이 있다. 그 태양 에너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햇빛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아침마다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누구를 차별하지도 않는다.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도시에게나 농촌에게나 똑같이 빛을 보낸다. 나무는 그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한다. 잎은 햇빛을 먹고 자란다. 숲은 햇빛을 품고 성장한다. 우리가 먹는 쌀과 과일과 채소도 결국은 햇빛이 만들어 낸 생명의 결실이다.
생명의 근원, 태양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것은 태양의 산물이자, 태양의 선물이다. 우리가 마시는 산소도 숲이 광합성을 하면서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태양에너지가 생명의 형태로 바뀐 것이다. 심지어 산업문명을 움직여 온 석탄과 석유도 수억 년 전 식물들이 저장한 태양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태양의 자식이다. 우리는 태양 속에서 태어나고 태양 속에서 살아간다. 인류이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태양을 신으로 숭배해 온 것도 이런 연유이리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일까. 너무 오랫동안 함께해 왔기 때문일까.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신록을 보며 감탄한다. 그러나 한 걸음만 더 들어가 보면 신록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신록은 햇빛이 남긴 흔적이다. 신록은 햇빛이 입은 초록색 옷이다. 신록은 눈에 보이는 생명의 얼굴이고, 햇빛은 그 얼굴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생명의 근원이다.
그래서 「신록예찬」은 어쩌면 「햇빛예찬」이라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다. 신록을 찬양한다는 것은 결국 생명을 찬양하는 일이고, 생명을 찬양한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인 햇빛을 찬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태양과 햇빛
지구 생태계의 환경위기에 심각해지면서 태양과 햇빛의 의미는 오늘날 더욱 각별하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는 지금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석탄과 석유를 사용하며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인류는 태양을 다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숲과 농작물을 통해 태양의 혜택을 받았다면, 오늘날에는 태양광 발전을 통해 직접 전기를 생산한다. 과거의 햇빛이 생명을 키웠다면 오늘날의 햇빛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지역사회를 살리는 힘이 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햇빛소득, 햇빛연금, 햇빛마을도 같은 맥락에 있다. 태양은 특정 기업만의 것이 아니다. 특정 지역만의 것도 아니다. 하늘의 햇빛은 모두의 것이다. 그 햇빛으로 생산한 에너지의 혜택을 주민들이 함께 나누고, 그 수익으로 마을을 돌보고, 지역의 미래를 준비하자는 발상은 자연의 순환 원리와도 닮아 있다.
숲이 한 그루 나무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듯이 햇빛 또한 우리 모두를 위한 공공의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햇빛소득마을은 단순한 발전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햇빛을 통해 공동체를 회복하고, 지역을 살리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려는 새로운 사회적 실험이다.
「신록예찬」은 곧 「햇빛예찬」
초여름 숲길을 걷다 보면 신록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필자가 좋아하는 「신록예찬」은 이제 숲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신록의 푸른 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함께 바라본다.
신록은 햇빛이 만든 기적이다. 햇빛은 생명을 키우고, 숲을 키우고, 사람을 키우고, 이제는 마을까지 키우고 있다. 「신록예찬」은 단순한 자연과 환경 생태 예찬문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을 향한 감사의 글이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노래하는 글이다.
그리고 오늘의 언어로 다시 읽는다면, 「신록예찬」은 곧 「햇빛예찬」이다. 신록이 생명의 얼굴이라면 햇빛과 태양은 생명의 심장이자 뿌리다. 우리가 진실로 예찬해야 할 것은 ‘신록’(新綠) 즉, 푸른 잎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햇빛의 힘, 태양의 힘이기도 하다.
황상규 칼럼니스트
ESG평가연구소장, ISO26000한국전문가포럼 공동대표,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독일 프랑크푸르트(괴테)대학 환경윤리학 박사 수료, , ‘사회책임의 시대‘(2013)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