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재생에너지가 마침내 화석연료의 벽을 넘어섰다. 지난 5월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 분석 자료를 인용해 올해 4월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이 사상 처음으로 천연가스 발전량을 추월했다고 보도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단순한 통계 변화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는 단순히 수사적인 성과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다. 에너지 업계의 주장대로라면 이는 에너지 전환 시대의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넘게 이어져 온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가 마침내 왕좌를 내준 기념비적 사건은 향후 에너지 활용의 판도가 어떻게 이뤄질 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에 다름아니다.
물론 화석연료 시대가 당장 끝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석탄과 천연가스는 세계 전력 공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기록이 미래의 가능성이 아닌 현재 진행형 변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 20년 전만 해도 '비싼 전기'였던 태양광의 약진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태양광 발전은 환경운동가들의 이상에 가까웠다. 일단 발전 단가는 높았고 효율은 낮았다는 것이 그것. 따라서 보조금 없이는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풍력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태양광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설치 비용이 높았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발전량 예측이 어려운 점 역시 풍력 발전을 믿고 의지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때문에 석탄과 천연가스 발전은 가장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원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상황은 2010년대 이후 급변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 익히 드러난 것처럼 중국 정부는 태양광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대규모 지원에 나섰다.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고무된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생산시설을 확대했고 결과적으로 태양광 패널 가격은 지난 10여 년 동안 80% 이상 하락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렇게 가격 경쟁력이 확보되자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중국의 폭발력은 연이은 연쇄작용을 야기시키기에 이른다. 가장 먼저 유럽이 움직였고 미국이 뒤를 이었다. 최근에는 인도와 중동 국가들까지 대규모 태양광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풍력 역시 기술 혁신의 혜택을 받았다. 특히 해상풍력 분야에서 발전 효율이 크게 향상되면서 대규모 상업 프로젝트가 가능해진 것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요소다. 한때 실험적 에너지로 취급되던 재생에너지가 주류 발전원으로 성장한 배경이다.
물론 그를 둘러싼 환경 변화 역시 이런 기류를 부추긴 게 사실이다. 이번 변화의 또 다른 배경은 기후변화다. 파리기후협정 이후 주요 국가들은 탄소중립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했다. 더불어 기업들도 탄소배출 감축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정책이 된 것이다.
여기에 지정학적 변수까지 더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 에너지 시장에 충격을 안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전세계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각종 전략을 들고 나왔다. 가장 적극적인 곳이 유럽이었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은 이후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를 국가 안보 전략과 연결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라도 자체 전력 생산 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실제로 최근 유럽연합(EU)은 국방비 확대 논의와 함께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에너지 정책과 안보 정책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 특정 에너지원에 기대는 현 구조는 에너지 안보에도 위협
이번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신규 투자 흐름에서도 확인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최근 세계에서 새롭게 건설되는 발전설비 가운데 상당수가 태양광과 풍력이다. 특히 태양광은 신규 발전 투자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로 평가된다. 설치 기간이 짧고 비용도 낮아졌기 때문이다.
대규모 발전소뿐 아니라 산업단지, 공장, 물류센터, 가정까지 활용 범위도 넓다. 에너지 산업 전문가들은 이제 경쟁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석탄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청정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할 수 있는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근 무섭게 치고 오르는 AI 시대 역시 재생에너지의 필요성을 더 추켜세우고 있다. 요 몇 년 사이 생성형 AI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국제에너지기구는 AI 확산이 향후 전력 수요 증가의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일부 지역의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도시 전체 소비량에 맞먹는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빅테크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장기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ESS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결국 AI 산업 성장과 재생에너지 확대가 서로를 밀어주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번 기록이 곧바로 재생에너지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풍력과 태양광은 날씨와 자연환경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간헐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햇빛이 부족하거나 바람이 약할 경우 발전량이 크게 감소할 수 있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서는 보완 수단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송배전망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신규 발전설비 건설보다 전력망 확충이 더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생산된 전력을 수요지까지 원활하게 전달할 송전 인프라가 부족해 병목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저장장치 역시 에너지 전환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점에 공급할 수 있는 ESS는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사실상 필수 설비로 평가된다. 최근 중국 태양광 기업들이 잇따라 ESS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러한 시장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변화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정부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산업은 대규모 전력 공급을 전제로 한다. 동시에 한국은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결국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특히 ESS 시장의 성장은 국내 배터리 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로 수요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ESS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다만 중국 기업들의 공세는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과 대규모 생산능력을 앞세워 글로벌 ESS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향후 재생에너지 산업의 경쟁 구도가 발전설비 중심에서 저장장치와 전력망 기술 중심으로 이동할 경우 한국 기업들 역시 기술 경쟁력 확보와 시장 선점 전략 마련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