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그동안 초고층 빌딩과 대형 업무시설 중심으로 활용되던 수열에너지가 공동주택(아파트) 시장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면서 냉난방 에너지 전환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공동주택 적용 가능성을 공식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전기료·난방비 절감과 탄소중립 실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한편, 초기 투자비와 인프라 제약 등 현실적 한계를 둘러싼 논쟁도 함께 커질 전망이다.
◆ 탄소중립·냉난방비 절감 기대 속 경제성 검증 필요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15일 서울 용산구 서울비즈센터에서 ‘수열에너지 발전협의체’ 출범식을 열고 수열에너지 보급 확대와 산업 생태계 조성 방안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이날 출범한 협의체에는 정부와 공공기관, 민간기업, 학계 및 연구기관 등이 참여해 수열에너지 산업 전반의 제도개선과 기술개발 방향을 논의한다.
특히 이번 협의체 출범의 핵심은 수열에너지 활용 대상을 기존 중대형 상업시설에서 공동주택까지 넓히겠다는 데 있다. 정부는 출범식에 앞서 ‘공동주택 수열에너지 보급 확대 간담회’도 열고 공공기관과 삼성전자, LG전자 등 민간기업 관계자들과 함께 실제 주거환경에서 적용 가능한 설비 방식과 효율성 검토에 나선다.
이는 사실상 정부가 아파트 냉난방 체계의 전환 가능성을 시험대에 올린 것으로 해석된다. 국내 에너지 소비 구조에서 건물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 데다 특히 공동주택이 전체 주거 형태의 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수열에너지가 아파트까지 확산될 경우 정책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열에너지는 하천수나 댐, 광역상수도 등 물이 계절에 따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특성을 활용하는 재생열에너지다. 일반적으로 여름철에는 대기보다 낮은 수온을 이용해 냉방 효율을 높이고, 겨울철에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수온을 활용해 난방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히트펌프와 열교환기를 결합해 냉난방 에너지를 공급하는 구조로, 전기 중심 냉난방 대비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정부는 기존 냉난방 설비와 비교해 약 30% 수준의 에너지 절감 효과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는 롯데월드타워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롯데월드타워는 수열에너지를 도입해 약 32.6% 수준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공공시설과 데이터센터에서도 수열 활용이 확대되는 추세다.
문제는 이러한 효율성이 공동주택에서도 재현될 수 있느냐다. 상업용 건물과 공동주택은 에너지 소비 구조 자체가 다르다. 업무시설은 사용시간과 냉난방 패턴이 비교적 일정한 반면, 공동주택은 세대별 생활 방식 차이가 커 에너지 수요 예측이 쉽지 않다. 여름철 냉방 사용 시간과 겨울철 난방 온도 역시 입주민마다 차이가 커 시스템 최적화가 더 복잡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설비 방식 역시 변수다. 중앙식 냉난방 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에너지 효율은 높일 수 있지만 유지관리 체계와 비용 분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세대별 개별 시스템은 사용자 편의성은 높지만 경제성과 효율 측면에서 불리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이번 간담회에서 ‘세대별 최적설계 방안’을 핵심 의제로 올린 것도 이 같은 현실적 문제를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경제성 확보 역시 최대 과제로 꼽힌다. 수열에너지는 초기 구축비용이 적지 않다. 열교환기와 히트펌프, 배관 설비 등 핵심 인프라를 새롭게 설치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기계실 공간 확보도 필요하다. 신규 아파트 단지라면 설계 단계에서 반영이 가능하지만 기존 아파트 리모델링 방식으로 적용할 경우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모든 지역이 동일한 조건을 갖춘 것도 아니다. 수열에너지는 도수관로나 하천 등 안정적인 수열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프라 접근성이 경제성을 좌우한다. 수도권 일부 대규모 택지지구나 광역상수도 인접 지역에서는 비교적 유리할 수 있지만, 전국 단위 보편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럼에도 업계는 공동주택 수열시장 확대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냉난방공조(HVAC), 히트펌프, 스마트 에너지관리 시스템 등 연관 산업 확대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에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참여한 것도 단순한 정책 논의를 넘어 향후 관련 시장 선점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정부 역시 발전협의체를 통해 핵심설비 국산화와 인증기준 마련, 시스템 설계 고도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해외에서도 수열에너지 활용은 확대되는 흐름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하천수와 해수를 활용한 지역 냉난방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일본 역시 도심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수열 활용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건물 부문 탄소배출 감축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 수열에너지는 도시형 저탄소 에너지원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다만 전문가들은 수열에너지가 만능 해법처럼 인식되는 데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역별 인프라 격차와 사업비 회수 기간, 입주민 수용성 문제 등을 감안하면 실제 보급 속도는 정부 지원 수준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발전협의체 출범은 단순한 정책 이벤트를 넘어 수열에너지가 대형 빌딩 중심의 틈새시장에 머무를지 아니면 공동주택까지 확산하며 냉난방 에너지 구조 자체를 바꾸는 대안으로 자리 잡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