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낮엔 남고 밤엔 부족해’.. 태양광 시대의 새로운 에너지 딜레마

유럽선 한낮 ‘마이너스 전기값’ 속출, 새로운 고민거리 등극
제주 출력제어 급증에 한국도 경고등 켜져 대책 마련 시급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탄소중립 시대의 핵심 해법으로 주목받아온 태양광 발전이 유럽에서 새로운 고민거리를 낳고 있다. 전력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 공급’이 문제로 떠오르면서다. 한낮에는 전기가 남아돌아 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해가 지면 공급이 급감해 전력망 안정성이 흔들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불안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생에너지 발전, 특히 태양광 발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한국에게도 눈여겨봐야할 대목이다. 아직 거기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현 추세대로라면 결코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껏 공들여만들어놓은 재생 에너지를 그대로 바닥에 흘려버려야할 지도 모르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 유럽 덮친 ‘솔라 글럿’.. 전기가 남아도는 역설
최근 유럽 에너지 시장에서는 ‘솔라 글럿(solar glut·태양광 과잉)’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면서 특정 시간대 전력 공급이 수요를 크게 웃도는 현상을 뜻한다. 특히 독일과 네덜란드, 스페인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낮 시간대 전력 가격 급락 현상이 빈번해지고 있다.

 

실제 유럽 전력시장에서는 전력 가격이 ‘0’ 아래로 떨어지는 마이너스 가격 현상까지 나타난다. 이는 발전 사업자가 전기를 팔아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계통에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신호로 해석한다. 태양광 발전 설비 확대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지만 이를 흡수하고 조절할 전력망(grid), 저장장치(ESS), 수요관리 체계 구축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제는 재생에너지 자체보다 ‘전기를 저장하고 이동시키는 시스템’에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에너지기구 (International Energy Agency, 이하 IEA)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전력망 부족을 에너지 전환의 핵심 리스크 가운데 하나로 지목했다. IEA는 태양광·풍력 중심의 전력 시스템으로 전환될수록 송배전망과 저장 인프라 투자가 병행되지 않으면 계통 병목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발전설비 확대 속도에 비해 전력망 투자가 뒤처질 경우 출력제어와 가격 변동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태양광은 생산과 소비 시간의 간극이 큰 대표적인 전원이다. 햇빛이 강한 낮 시간 발전량이 집중되는 반면, 실제 전력 수요는 퇴근 이후 저녁 시간대 급증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낮에는 전기가 남아돌고 밤에는 공급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이를 ‘덕 커브(Duck Curve)’ 현상이라고 부른다. 전력 수요 그래프가 오리 형태처럼 낮 시간대 움푹 내려갔다가 저녁 시간대 급격히 치솟는 모습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 태양광보다 더 중요한 전력망.. 한국도 딜레마 시작
문제는 남는 전기를 저장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 화석연료 발전 중심 체계에서는 발전량 조절을 통해 수급 균형을 맞출 수 있었지만, 태양광·풍력 중심 구조에서는 저장과 송전 능력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싱크탱크 Ember는 최근 분석에서 유럽연합(EU)의 태양광 발전 비중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낮 시간대 전력 공급의 핵심 전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에 비해 계통 인프라 확충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전력시장 변동성 역시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 송전망 운영기관들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유럽전력송전사업자네트워크(European Network of Transmission System Operators for Electricity)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 시스템 안정성 확보를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 간 송전 연계와 저장 능력, 실시간 수요관리 체계가 향후 유럽 전력시장의 안정성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유럽에서는 발전소 건설보다 송전망 확보가 더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태양광 발전이 집중되는 지역과 전력 소비가 많은 산업도시 간 거리가 멀어지면서 초고압 송전망(HVDC) 구축과 국가 간 전력망 연결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를 얼마나 생산하느냐보다 생산된 전기를 필요한 곳으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이 같은 문제는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이미 제주에서는 태양광·풍력 발전량 증가로 출력제어가 반복되고 있다. 발전이 가능해도 계통 수용 한계를 넘어서면 발전 자체를 제한해야 하는 상황이다. 호남권 역시 재생에너지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계통 포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

 

 

재생에너지 확대보다 전력망 수용 능력이 더 시급한 과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주 지역 출력제어와 지방 전력망 부족 현상은 유럽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의 초기 단계와 유사하다는 평가다.

 

특히 한국은 수도권 중심의 전력 소비 구조라는 한계도 안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설비는 주로 비수도권에 들어서지만, 실제 전력 소비는 수도권에 집중된다. 결국 장거리 송전망 구축이 필수지만 주민 반발과 입지 갈등으로 사업 속도는 더디다. 업계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보다 송전망 건설 속도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도 새로운 변수다. 글로벌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남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수소 생산과 데이터센터 운영, 산업용 전력 수요 이전 정책 등이 논의되고 있다. 단순히 발전량을 늘리는 것을 넘어 전력 소비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혼란을 재생에너지 확대 실패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에너지 전환이 다음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발전설비 확대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저장·송배전·수요관리 중심의 시스템 전환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태양광 시대의 경쟁력은 패널 설치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낮에 남는 전기를 저장하고 밤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생산된 전기를 필요한 곳으로 효율적으로 이동시키는 전력망이 국가 에너지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이 먼저 겪고 있는 ‘전기의 과잉과 부족’은 한국 역시 피하기 어려운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