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밥상 덮친 중동 리스크.. 글로벌 식량값 상승세 재점화

FAO 식량가격지수 2023년 초 이래 3년만 최고 수준 기록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 놓인 한국 촉각 곤두세워

 

[엔트로피타임즈 김재영 기자] 국제 식량가격이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며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새로운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식량가격 지표가 약 3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중동 지정학적 긴장이 에너지 시장을 넘어 식량 공급망까지 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 통상 수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 소비자 물가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한국 역시 ‘먹거리 물가 재상승’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 국제 식량가격 자극 여파
유엔 산하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4월 세계 식량가격지수(FFPI)는 130.7포인트를 기록하며 전월보다 1.6% 상승했다. 3개월 연속 오름세이자 2023년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기록했던 정점보다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FAO 식량가격지수는 곡물·육류·유제품·식물성 유지류·설탕 등 주요 식품 원자재 가격 변동을 종합한 대표적인 국제 식량지표다. 글로벌 식량시장 흐름을 보여주는 ‘체온계’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각국 정부와 금융시장, 식품업계가 예의주시하는 수치다.

 

이번 가격 상승을 이끈 핵심 품목은 유지류다. FAO에 따르면 식물성 유지류 가격은 전월 대비 5.9% 급등하며 2022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팜유·대두유·해바라기유·유채유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영향이다. 곡물 가격도 소폭 상승했고 육류 가격 역시 오름세를 보였다. 반면 설탕과 일부 유제품 가격은 하락했다.

 

문제는 이번 상승세의 배경이다. 시장에서는 단순한 기상 악화나 공급 부족이 아닌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국제 식량가격을 자극하는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최근 중동 지역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고, 에너지 가격 상승이 식량 공급망 비용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세계 원유 해상 운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물류비 상승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FAO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중동 긴장이 에너지 가격과 비료 공급 불안을 자극하며 국제 식량시장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식량시장에서는 에너지 비용 상승이 단순히 운송비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농업 생산 과정 자체가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비료 생산에 사용되는 암모니아의 핵심 원료는 천연가스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면 비료 생산비가 높아지고 이는 곧 농가 생산비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밀·옥수수·콩 등 주요 곡물 가격이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FAO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막시모 토레로는 최근 인터뷰에서 “농업 투입 비용 상승이 서서히 식량 원자재 가격으로 전이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유지류 가격 급등이 바이오연료 수요 확대와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설명했다.

 

◆ 곡물 자급률 낮은 한국, 원가 부담 불가피할 듯
실제 글로벌 식량시장은 지정학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세계 주요 곡물 수출 통로였던 흑해 물류망이 흔들리면서 국제 밀 가격은 급등했고, 이는 국내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당시 제빵·제면업계를 중심으로 원가 부담이 확대됐고 라면·빵·과자 가격 인상이 잇따랐다. 축산업계 역시 사료 가격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육류 가격 인상 압력이 커진 바 있다.

 

한국 역시 이번 식량가격 상승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주요 곡물 자급률이 낮은 대표적인 수입 의존 국가다. 밀과 옥수수, 대두 등 핵심 곡물 상당량을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으며, 축산용 사료 역시 대부분 수입 곡물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국제 식량가격 상승은 일정 시차를 두고 국내 식품업계 원가 부담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밀 가격 상승은 제빵·제면업계 부담을 키우고, 유지류 가격 상승은 식품 제조 원가를 끌어올린다. 여기에 축산 사료 가격까지 오를 경우 육류와 유제품 가격 상승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최근 국내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먹거리 물가 부담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외식 가격과 가공식품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국제 원자재 가격까지 상승할 경우 생활물가 부담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향후 흐름은 중동 정세 안정 여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FAO는 올해 글로벌 곡물 생산량 전망치를 소폭 상향 조정하며 공급 측면에서 즉각적인 위기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은 사상 최대 수준인 약 30억 4000만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지정학적 충돌 장기화와 물류 차질이 현실화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비료 가격 상승과 운송비 부담 확대가 겹칠 경우 농업 생산 비용 증가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특히 고온·가뭄 등 이상기후까지 더해질 경우 식량 공급망 변동성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미 유가 다음은 식탁 물가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제 에너지 가격 충격이 결국 소비자 밥상 물가로 이어지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진정세를 보였던 글로벌 식량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와 식품업계 모두 국제 식량시장 흐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