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유가 공포? 비료 쇼크가 더 무서운 한국 농가들

국제 분쟁이 촉발한 ‘복합 인플레이션’, 밥상 물가에 직격탄
에너지·비료·식량·물류가 얽힌 장기 위기, 한국 경제의 새 변수로 떠올라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중동발 긴장이 촉발한 에너지 충격이 한국 소비자 물가 전반을 흔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국제 유가 급등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지만 실제로 더 큰 파장을 낳을 변수는 ‘비료 가격’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비료 가격 상승이 농산물 생산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식량 가격 급등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진단이다.

 

국제기구는 이미 식량 가격 상승을 공식 경고했고 시장에서는 라면·치킨·외식까지 줄줄이 오르는 ‘전방위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금의 유가 상승은 시작에 불과하고 실제 충격은 몇 달 뒤 식탁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 에너지·식량 가격 동시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 못해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 'The Guardian'은 5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이 지역의 해상 운송 리스크가 확대되며 에너지뿐 아니라 각종 원자재 이동에도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완전히 새로운 소식도 아니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8일 공동성명을 내놓고 중동 충돌이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동시에 오르는 ‘복합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가스·비료 가격 상승이 식량 가격을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같은 충격이 단순한 유가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비료 가격이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금융 정보업체 ‘Refinitiv’에 따르면 최근 주요 비료 가격 지수는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하며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비료 생산의 핵심 원료인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데다 해상 운송 불안까지 겹치면서 공급 차질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정책 분석 매체 ‘EU Perspectives’도 5월 초 보고서에서 중동 지역의 물류 리스크가 비료 유통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료 가격 상승이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이 변화가 ‘시간차를 두고 더 큰 충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료는 농업 생산의 핵심 투입재로 비료 가격이 오르면 농가들은 사용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작물 생산 감소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식량 가격 상승으로 연결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이러한 과정에서 통상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식량 가격이 급등하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고 분석한다. 지금의 비료 가격 상승이 몇 달 뒤 밥상 물가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 같은 구조는 한국에서 더욱 직접적이고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은 곡물 자급률이 20%대에 머물고 사료용 곡물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밀과 옥수수, 대두 등 주요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이를 흡수할 완충 장치가 거의 없다. 결국 국제 가격 상승이 곧바로 국내 식품 가격으로 전이되는 구조다.

 

실제 영향 경로도 비교적 명확하다. 밀 가격이 오르면 라면과 빵, 과자 가격이 상승하고, 옥수수와 사료 가격이 오르면 닭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뒤따라 오른다. 식용유 원료 가격 상승은 가공식품 전반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특정 품목이 아닌 밥상 전체가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체감 물가 상승 폭은 더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 요동치는 밥상 물가.. 물가 상승 압력 장기화될까
이미 초기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영국 매체 ‘The Sun’은 5일 보도에서 식료품 가격이 상승세에 진입했으며 향후 추가 인상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식품업계가 원재료 가격 상승 부담을 일부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고, 사료비 상승은 축산물 가격 인상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비용 상승까지 겹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기요금과 연료비 상승은 생산비를 끌어올리고 물류비 상승은 유통 가격을 자극한다. 외식업계 역시 재료비와 에너지 비용 부담이 동시에 증가하면서 메뉴 가격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가 동시에 오르는 ‘이중 인플레이션’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이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단순히 유가 상승이 물가를 자극하던 기존 구조와 달리 이번에는 에너지와 비료, 식량, 물류가 서로 얽힌 복합 위기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충격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관건은 시간이다. 현재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먼저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 소비자가 체감하는 충격은 비료와 식량 가격을 거치며 수개월 뒤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이 “에너지 위기는 이미 시작됐지만, 식량 위기는 이제 시작 단계”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향후 3~6개월 사이 식량 가격이 본격적으로 상승할 경우 한국 소비자 물가는 하반기 들어 다시 한 번 강한 상승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유가보다 늦게 오지만 더 넓게 퍼지는 ‘비료발 물가 충격’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 곡물 자급률이 20% 불과해 충격파 더 클 수밖에 없어
이 같은 우려는 국내 비료 시장 구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에 따르면 국내 비료 자급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하며, 질소·인산·칼륨 등 핵심 원료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국내 비료 가격은 평균 30% 이상 상승했고, 일부 품목은 두 배 가까이 뛰었다는 통계도 나온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비료값이 오르면 농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비료 가격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비축 물량 방출과 긴급 보조금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가 단기 처방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수입 의존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같은 충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수입선 다변화와 친환경 대체 비료 개발 등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일본과 유럽연합(EU)은 이미 비료 공급망 안정화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추진 중이다.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의 취약성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옥수수와 대두 등 주요 곡물 자급률이 높아 국제 가격 변동에 대한 완충 장치가 존재한다. 중국 역시 세계 최대 수준의 비료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내수 충격을 일정 부분 흡수할 수 있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곡물 자급률이 20%대에 머물러 있어 외부 충격이 곧바로 소비자 물가로 전이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 같은 구조적 취약성은 이미 소비자 체감 물가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급식비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고, 외식업계도 메뉴 가격 조정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한 치킨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사료비와 식용유 가격이 동시에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라면과 빵, 과자뿐 아니라 급식과 외식, 가공식품 전반에서 가격 인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망도 밝지 않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3~6개월 내 식량 가격 상승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중동을 비롯한 국제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와 비료, 식량, 물류가 동시에 얽힌 복합 위기가 1~2년 이상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이번 위기는 더 이상 유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밥상으로 번진 ‘비료 쇼크’가 한국 물가의 방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