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보다 중요한 안보.. 美, 해상풍력 5개 전면 중단

  • 등록 2025.12.24 14: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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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 달러 규모 사업 직격탄..완공 임박 프로젝트도 포함
글로벌 에너지 시장 영향.. 원전·화석연료 재부상 가능성 커져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미국 정부가 대형 해상 풍력 발전 사업을 전격 중단하며 에너지 정책의 방향 전환을 공식화했다. 친환경 에너지 확대를 주도해온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제동을 건 것은 이례적인 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 내무부는 2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국가 안보와 관련된 잠재적 위험이 확인됨에 따라, 현재 추진 중인 주요 해상 풍력 프로젝트의 임대 및 건설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동부 연안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5개 대형 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이번 발표로 신재생 에너지 확산 기조에 자칫 찬물이 끼얹어지는 건 아니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에너지 안보보다 더 중요한 국가 안보..군사 레이더 간섭 우려
에너지 전환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시대적 소명이다. 미국 역시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정부가 내세운 핵심 근거는 군사적 위험이다.

 

미 국방 당국은 해상 풍력 터빈의 대형 회전 날개와 구조물이 레이더 신호에 간섭을 일으켜 방공 및 해상 감시 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른바 ‘레이더 클러터’ 현상으로, 실제 표적을 가리거나 허위 신호를 생성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에너지 인프라가 군사 작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전면 중단이라는 강수를 선택했다. 에너지 정책이 단순한 환경·산업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의 영역으로 확장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에너지 전환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국가 안보를 희생하면서까지 행할 수 없다는 입장인 셈이다.

 

이는 중단된 사업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중단된 사업에는 미국 동부 핵심 해상 풍력 프로젝트들이 포함됐다. 매사추세츠의 ‘Vineyard Wind 1’, 뉴욕의 ‘Empire Wind’와 ‘Sunrise Wind’, 로드아일랜드의 ‘Revolution Wind’, 버지니아의 ‘Coastal Virginia Offshore Wind’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프로젝트는 대부분 이미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로 일부는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전체 투자 규모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며, 완공 시 수십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대형 인프라 사업으로 평가돼 왔다. 이번 조치로 관련 기업들은 대규모 손실과 일정 지연 등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정책 발표 직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흔들린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해상 풍력 사업을 추진해온 주요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했고, 일부 기업은 투자 회수 지연과 프로젝트 재검토에 들어갔다. 특히 유럽계 에너지 기업들은 미국 사업 비중이 큰 만큼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해상 풍력 산업 전반의 투자 리스크가 재평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 안보가 먼저일까 에너지 전환이 먼저일까
미 정부의 입장은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것이지만 그에 따른 반발이 없을 리 없다. 벌써부터 미국 내부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환경단체와 일부 정치권은 “청정에너지 전환에 역행하는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안보를 우선시하는 측은 “군사적 취약성을 방치할 수 없다”며 정부 조치를 지지하고 있다.

 

특히 해당 사업들이 이전 행정부에서 승인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정책 연속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에너지 정책이 정권 변화에 따라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의 배경에 경제성 문제도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 금리 상승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해상 풍력 발전의 건설 및 유지 비용이 크게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사업 수익성이 악화돼 왔다. 실제로 일부 프로젝트는 비용 문제로 일정이 지연되거나 투자 규모가 축소된 사례도 있었다. 때문에 이번 결정은 단순한 안보 이슈를 넘어 안보·경제성·정치적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심각한 건 이로 인한 파장이 미국을 넘어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미국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하기도 한다. 더불어 그동안 확대돼 온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흐름이 조정 국면에 들어갈 수 있으며, 안정성과 비용 경쟁력을 갖춘 에너지원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원자력 발전, 천연가스, 전통 화석연료 등이 대안으로 재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발전 비중을 줄이던 사업 카드를 다시 꺼내들 정도로 이번 결정이 지니는 의미가 적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순히 신재생 에너지 사업의 축소가 아니라 본질적인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암시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간 전세계는 친환경이라는 대전제 아래 에너지 산업의 전환을 꾀해왔다. 그 중심에 풍력이나 태양열 발전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국가적 이익 앞에선 그조차도 외면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의 이번 결정이 일시적 조치에 그칠지, 아니면 글로벌 에너지 질서 재편의 신호탄이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에너지가 더 이상 산업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미국의 추가 조치와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응에 따라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향방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손영남 기자 son364@entropy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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