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트로피타임즈=임종순 칼럼니스트]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겪어야 할 일을 겪는다."
24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우리에게 비정한 진실을 전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이 문장을 인용한 이유는 명확하다.
스스로 지킬 실질적인 국력과 전략적 영리함이 없는 국가의 정의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는 이 '현실주의'의 교훈은, 오늘날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된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중 패권 경쟁이 가열되고 기후 위기가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변모하는 시대에, 에너지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주권을 결정짓는‘힘(Power)’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냉혹한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가? 최근 발표된 매킨지의 ‘2025 액화천연가스(LNG) 구매자 설문조사 보고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전략적 힌트를 던져주고 있다.
가격 임계점 8달러($) : 폭발하는 수요와 기회의 창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LNG 시장은 2025년 이후 대규모 공급 프로젝트가 가동되면서 '구매자 우위(Buyer's Market)'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가격에 따른 수요의 탄력성이다. MMBTU당 가격이 $12 이하일 때는 수요 변화가 미미하지만, $8 이하로 떨어지는 순간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지역은 이 구간에서 최대 20MTPA 수준의 추가 수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안보를 위한 기본 수요 외에, 가격이 충분히 낮아질 경우 발전 믹스에서 가스 비중을 탄력적으로 늘릴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첫째, LNG는 여전히 아시아 에너지 시장의 핵심 동력이라는 점이다.
둘째, 가격이 충분히 낮아질 경우 우리는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면서도 발전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기회의 창'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시대의 역설: LNG라는 '에너지 완충망'
현재 우리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태양과 바람에 의존하는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널뛰는 '간헐성'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LNG의 역할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LNG는 단순히 석탄을 대체하는 연료가 아니라,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즉각적으로 보충할 수 있는 '백업 전원(Backup Power)'이자 '브릿지 에너지'로서 필수적이다.
우리는 멜로스 섬의 주민들처럼 도덕적 당위성이나 이상적인 에너지 믹스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격이 $8 미만으로 떨어지는 유리한 시기에 전략적 비축량을 과감히 확대하여,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대응하는 튼튼한 '에너지 완충망'을 구축하는 정책적 영리함이 필요하다.
"뭉치면 세력이 된다.": 한·일 협력과 경제적 안보 블록
카니 총리는 "혼자 있으면 멜로스가 되지만, 뭉치면 세력(Block)이 된다."고 강조했다. 고립된 멜로스는 강대국의 힘 앞에 무너졌지만, 현대의 중간국들은 연대를 통해 강대국이 무시할 수 없는 '제3의 축'을 형성할 수 있다.
우리와 일본은 LNG 수요 구조와 가격 임계점이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한·일 간 LNG 공동 구매 및 물량 스왑(Swap) 체계를 강화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일 셔틀 외교의 실무 안건으로 이를 상정하여 공동의 협상력을 높인다면, 도입 비용을 절감하고 공급망의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카니가 말한 '경제적 안보 블록'의 실천적 모델이다.
미래를 향한 포석 : Hydrogen-Ready와 기술 주도권
마지막으로, 현재의 LNG 인프라를 미래 수소 경제와 연결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신규 LNG 터미널과 발전소를 건립할 때부터 향후 수소 혼소가 가능한 '수소 기반 기술 전환(Hydrogen-ready)' 시설로 설계, 에너지 전환의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고 기술적 주도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분야에서 약자가 된다면, 우리는 다시금 강대국의 기술 장벽과 탄소 국경세 아래 고통받는 처지가 될 것이다. 에너지 전환기의 우리는 '당하지 않기 위해 좀 더 영리해져야 한다.' 이상주의적 명분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LNG라는 전략적 자산을 활용해 실질적인 힘을 비축해야 한다.
비슷한 처지의 국가들과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고, 계약조건, 가격 유연성을 극대화하는 정책적 기민함을 발휘할 때, 비로소 강대국 간의 패권 다툼 속에서도 주권과 번영을 지켜내는 '강력한 중간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냉혹한 현실 정치의 세계에서 우리를 대신해 지켜줄 이는 아무도 없다. 오직 우리의 실력과 연대만이 우리의 평화를 보장한다.

▲ 임종순 칼럼니스트 / 서울여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전 한국가스공사 부사장)

▲ 임종순 칼럼니스트 / 서울여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전 한국가스공사 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