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업계, EV 침체 속 로봇 시장으로 전략적 전환 꾀해

  • 등록 2026.02.09 15: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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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둔화와 중국 저가 공세 속 신성장 축 모색 골몰
EV 한계 넘어 로봇·ESS로 확장하는 한국 배터리 업계 눈길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세계 배터리 산업은 전기차 중심 성장의 한계와 새로운 수요의 부상이라는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EV 시장 성장 둔화, 중국의 저가 공세, 그리고 글로벌 에너지 전환 정책 변화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기존의 성장 모델은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단순한 자동차용 배터리 공급자에서 벗어나 로봇·에너지저장장치(ESS)·차세대 자동화 시스템 등 새로운 응용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산업 구조 재편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결합하는 ‘AI 물리 시대(AI Physical Era)’의 도래는 고성능·고밀도 배터리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한국 기업들이 기술적 우위를 발휘하며 글로벌 배터리 산업의 새로운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무대가 되고 있다.


◆ 글로벌 EV 성장 둔화, 로봇 차세대 성장축으로 급부상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주요 시장 조사기관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EV) 등록 대수는 2025년 약 2,070만 대로 전년 대비 20% 증가했지만, 2026년부터는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의 판매 증가율은 2%에 그쳐 최근 수년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으며, 미국과 유럽에서는 보조금 축소와 인프라 부족으로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 


반면 로봇 시장은 2025년 556억 달러 규모에서 2035년 2,583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연평균 성장률은 16.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만 해도 2035년까지 3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고성능 배터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게 EV 중심의 성장 모델을 넘어 새로운 응용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기류를 포착한 한국 배터리 메이커들의 전략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 On 등 주요 기업들은 EV 중심의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로봇 산업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삼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니라, 중국의 저가 공세 속에서 한국 배터리 산업이 고성능 기술을 무기로 차별화된 시장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EV 시장은 지난 수년간 각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과 친환경 기조에 힘입어 급성장했지만, 최근 들어 미국과 유럽에서 보조금 축소와 소비자 수요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충전 인프라 확충이 기대만큼 빠르게 진행되지 못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의지가 약화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경기 둔화와 에너지 가격 불안정이 EV 수요를 제약하고 있다. 


중국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대량 공급하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고, 이에 따라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니켈·코발트·망간(NCM) 기반의 고성능 배터리에 집중해왔으나, 가격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 기업들로 하여금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로봇 산업은 새로운 기회로 부상하고 있다. 물류 자동화 로봇은 전자상거래 확대와 맞물려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의료·돌봄 로봇은 고령화 사회에서 필수적인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과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용 로봇 도입이 늘고 있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과 유사한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고출력·경량 배터리가 필수적이다. 니케이 아시아는 6일 보도를 통해 한국이 니켈 기반 고성능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보다 앞서 있으며, 휴머노이드 로봇 수요가 이 강점을 뒷받침한다고 분석했다.


◆ 한국 배터리 3사, 로봇·ESS로 신성장 축 모색

가장 앞서있는 곳이 바로 한국의 배터리 3사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글로벌 선도 기술 기업 6곳에 서비스 로봇, 자율주행 이동 로봇, 휴머노이드 플랫폼용 원통형 배터리 셀을 공급하고 있으며, 차세대 모델을 위한 사양 및 양산 일정 협의도 진행 중이다. 회사는 빠른 충전과 잦은 사용 주기를 견딜 수 있는 경량·고효율 배터리 팩을 제공하며, 전동 공구와 전자기기에서 검증된 기술을 로봇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특히 원통형 배터리의 모듈화 설계를 통해 로봇 제조사들이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로봇에 맞춤형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공급을 넘어 로봇 산업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다.




삼성SDI는 지난해 2월, 현대자동차그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로봇에 최적화된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협업의 초점은 출력 안정성, 내구성, 패키징 유연성에 맞춰져 있으며, 현대차가 미국 로봇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모회사라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또한 삼성SDI는 EV 시장에서 확보한 고에너지밀도 배터리 기술을 로봇에 맞춤형으로 적용해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로봇 제조사와의 협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 특히 로봇의 반복적인 동작과 장시간 구동에 필요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열 관리와 충방전 효율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SK On은 로봇뿐 아니라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를 병행하며 EV 의존도를 줄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ESS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맞물려 성장성이 크며, 로봇과 함께 차세대 성장 축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SK On은 ESS와 로봇 배터리 기술을 융합해 스마트 팩토리와 스마트 시티 인프라에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관리와 자동화 시스템을 동시에 아우르는 종합 솔루션 제공자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정책적 지원도 업계의 변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배터리 기술을 포함한 지원책을 마련 중이다. 이는 배터리 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로봇과 배터리 융합 기술을 국가 R&D 프로젝트에 포함시키며, 산업 생태계 전반의 혁신을 유도하고 있다. 또한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로봇 배터리 실증 사업을 지원하고, 글로벌 표준화 과정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을 강화하고 있다.


기술 경쟁 구도 역시 뚜렷하다. 한국은 NCM 배터리 기술에 강점을 갖고 있으며, 이는 달리기, 계단 오르기, 물건 잡기 등 로봇의 고출력·다기능 동작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 중국은 LFP 배터리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로봇 분야에서는 성능 한계가 지적된다. 일본은 소형화와 안전성에 강점을 두고 있으며, 미국은 AI와 로봇 플랫폼 통합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경쟁은 다극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며, 한국은 고성능 배터리 기술을 무기로 프리미엄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협력 확대도 주목된다. CES 2026 등 국제 전시회에서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 On은 현대차·테슬라·보스턴 다이내믹스 등과 협력 의지를 공개하며 ‘AI 물리 시대(AI Physical Era)’의 핵심 공급자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공급을 넘어, 글로벌 로봇 생태계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위상을 강화하는 계


시장 전망치 역시 긍정적이다. 글로벌 로봇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556억 달러에서 2035년 2,583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수요 역시 이에 비례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EV 시장 둔화로 인한 매출 공백을 상당 부분 메울 수 있는 규모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과 서비스 로봇 분야는 고성능 배터리 수요가 집중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한국 기업들이 기술적 우위를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다만 리스크 요인도 존재한다. 로봇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로 대규모 상용화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배터리 원재료 가격 변동, 공급망 불안,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가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EV 시장을 완전히 버릴 수 없으므로 EV와 로봇, ESS를 병행하는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EV 시장에서의 입지를 유지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로봇과 ESS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손영남 기자 son364@entropy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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