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지난 10여년간 한국 태양광 산업은 ‘설치 속도’라는 성과로 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산업의 무게중심은 빠른 보급에서 ‘설치 이후’로 옮겨가고 있다. 태양광 패널은 20~30년의 수명을 가진 뒤 대량의 폐기물로 전환되며, 이를 어떻게 처리하고 자원으로 되살릴 지가 새로운 경쟁의 기준이 되고 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연간 5GW 규모의 폐패널을 처리할 수 있는 재활용 공장이 가동되면서 이 흐름은 더욱 뚜렷해졌다. 유리와 금속을 90% 이상 회수해 다시 산업 공급망에 투입하는 구조는 단순한 환경 대응을 넘어 원자재 비용 절감과 공급망 안정성 확보라는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설치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 산업에 있어 이 사건은 경고이자 기회다. 이제는 ‘얼마나 많이 설치했는가’가 아니라 ‘설치 이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 탄소 저감과 비용 효율, 폐패널 재활용의 새로운 길
지난 2일, 재생에너지 전문 매체 ‘Renewables Now’는 미국 태양광 재활용 전문기업 솔라사이클이 조지아주 세다타운에 연간 5GW 규모의 재활용 공장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가동에 둘입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시설은 기존 설비 대비 처리 속도와 효율이 크게 향상됐으며, 폐패널에서 유리, 알루미늄, 구리, 은 등 핵심 자원을 회수할 수 있다. 유리 회수율은 90% 이상, 금속 회수율은 95% 수준으로 알려졌다.
또 폐기물 매립을 사실상 없앤 ‘제로 랜드필(Zero Landfill)’ 운영이 가능해 환경적 부담을 최소화한다는게 Renewables Now의 지적이다. 솔라사이클은 재활용 공정과 태양광 유리 제조 공정을 통합해 회수한 유리를 다시 원료로 활용하는 수직 통합 구조를 계획 중이다. 태양광 전문 매체 PV Tech는 이 모델이 원자재 비용 절감과 공급망 안정성 확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정책적 지원도 뒷받침되고 있다. 미국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Inflation Reduction Act)을 통해 재활용 설비 투자에 금융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폐패널 관리가 단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요소로 부상했다고 Renewables Now는 전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솔라사이클 공장이다. 이 시설은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산업 공급망에 자원을 재투입하는 구조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회수된 유리와 금속은 새로운 태양광 패널 제조 원료로 사용되며, 일부 시설에서는 은과 구리까지 회수해 고부가가치 자원으로 재활용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가 장기적으로 원자재 가격 변동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산업의 비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폐패널 재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기술적 접근은 ESG 경영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 설치 성과 뒤에 숨은 과제, 한국 태양광 재활용의 현실
201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늘어난 태양광 설치로 한국은 현재 약 18~20GW 규모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성장은 곧 대량의 폐패널 발생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예고한다. 평균적인 태양광 패널 수명이 20~30년임을 감안하면, 상당수 설비가 향후 10~15년 내 폐기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국내 재활용 인프라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대부분 소규모 처리나 일부 실증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회수된 자원을 제조 공정에 재투입하는 순환 구조 역시 제한적이며, 산업적 부가가치를 충분히 창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설치 속도에서 세계적 성과를 냈지만 재활용과 자원 순환에서는 글로벌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다고 평가한다. 향후 폐패널 발생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면 적절한 재활용 체계 구축 여부가 한국 태양광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국내 기업들이 대응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일부 기업은 이동형 재활용 설비를 통해 현장에서 패널을 분해·처리하고, 물류 비용과 탄소 배출을 줄이는 시범 모델을 운영 중이다. 다른 기업들은 패널 구조 분해, 부품 재사용, 성능 개선 기술을 통해 산업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대규모 중앙집중형 시설과는 다른 접근이지만, 한국 지리와 산업 구조에 적합한 현실적 해결책으로 평가된다. 특히 설치 현장 근처에서 재활용을 진행하면 운송비 절감과 폐패널 관리 비용 감소 효과가 동시에 발생하며, 현장 실증을 통해 기술 완성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
정책 환경도 중요한 변수다. 한국은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를 통해 태양광 패널 사후 관리를 제도권으로 편입시키고 있으나,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폐패널 발생량이 본격적으로 증가하면 재활용 의무 강화와 산업적 활용 방안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재활용을 단순한 환경 규제 대응이 아닌 산업 경쟁력 확보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기적으로는 폐패널 회수와 재활용이 산업 공급망 안정화, 원자재 비용 절감, ESG 전략과 직결될 수 있어 정책적 준비와 기업 전략 수립이 동시에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태양광 산업 경쟁력이 설치 용량이나 발전 단가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설치 이후 발생하는 폐기물과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산업에 재투입할 수 있느냐가 새로운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솔라사이클의 사례는 태양광 산업이 설치 중심 성장에서 전 주기 관리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한국 산업도 이에 대응해 재활용 전략과 인프라 구축을 본격화해야 한다. 설치 속도에서 앞섰던 과거 성과만으로는 앞으로 다가올 폐패널 시대를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한국 태양광 산업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폐패널 관리와 자원 순환을 산업 전략의 핵심으로 삼는 전환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