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트로피타임즈=이상현 편집위원]
오는 5일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맺은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 стратегических наступательных вооружений, СНВ-3)의 효력이 만료, 미러 두 강대국이 핵을 포함한 전략무기 개발에 제한을 두지 않게 됨에 따라 군비경쟁이 가속화 될 전망이다.
더욱이 양국이 경쟁적으로 핵개발을 가속화하면서 다른 국가에는 기존 규범인 ‘핵개발 금지’를 강요하는 모순적 상황이 연출, 결과적으로 핵 개발 수요가 확산될 가능성도 커질 전망이다. 지구촌에 안보 불안정성, 곧 ‘엔트로피(entropy)’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양상이다.
러시아 전문가인 제성훈 교수(한국외대)는 3일(서울 시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러미는 3개 조약으로 냉전기부터 탈냉전기에 이르기까지 지구 차원의 전략적 안정성을 보장해왔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무력 투톱의 전쟁방지 3개 조약 모두 실효
세 조약은 각각 ▲탄도탄 요격미사일 조약(Anti-Ballistic Missile(ABM) Treaty) ▲중거리 핵전력 조약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INF) Treaty) ▲신전략무기감축조약(뉴스타트, New START)을 가리킨다.
1972년 5월26일 미국과 소련이 체결한 ABM은 말 그대로 ‘탄도탄 요격 미사일’을 제한하는 조약이다. 미국은 지난 2002년 미사일방어체계(MD) 구축을 위해 ABM을 전격 탈퇴했다.
미국은 아울러 지난 2019년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문제삼으며 INF도 파기했다. 마지막 남은 ‘뉴스타트’도 파기할 수밖에 없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러시아는 ‘뉴스타트’ 조약 틀 안에 명시된 제한을 1년 더 준수하겠다고 미국측에 제안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별다른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러미 양측은 기술적으로도 조약시한을 공식 연장할 수 없다. 연장 근거 조항(option)이 이미 1번 사용돼 더 이상 형식상으로 연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정, 갱신만 가능하다.
미 트럼프 행정부는 ‘뉴스타트’ 조약의 자연 만료를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초 <뉴욕타임즈>에 “만료되면 만료되는 것(If it expires, it expires)”이라고 발언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미 “중국 등 타 핵보유국 참여시키고 개념도 수정해야”
미국은 ‘뉴스타트’ 조약을 단순히 연장하는 대신 새로운 협정 혹은 포괄적으로 확대된 틀을 원한다. 구체적으로 중국을 포함한 다자적 핵군축 협상 필요성을 강조한다. 단지 미국-러시아 2자 간 제한을 넘어, 중국 같은 다른 핵보유국을 포함시키는 새로운 합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성훈 교수는 “미국은 중국이 조약에 참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면서 “이는 기존 ‘뉴스타트’ 조약으로 전략적 안정성 담보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아울러 핵무기로 대표되는 전략무기 개념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새 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제 교수는 “러시아가 선보이고 있는 부레베스트니크(핵추진 핵무장 순항미사일), 오레슈니크(마하 10 초과 극초음속 중거리탄도유도미사일(IRBM), 포세이돈(핵추진 무인 해상 드론) 같은 신무기들은 ‘뉴스타트’ 조약 틀에 포함되지 않은 무기들”이라고 설명했다.
군비경쟁에서 소련을 결국 이겼던 미국이 군사력 1위 자리를 내어줄 가능성이 없다는 점도 미국이 ‘뉴스타트’ 같은 조약 갱신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로 관측된다. 제 교수는 “미국은 전쟁 중인 러시아에게 전략무기 개발 여력이 있은지 회의적이며, 따라서 군비경쟁에서 러시아를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쟁이 끝나는 국면에서 ‘포스트 뉴스타트’ 논의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중러밀착 막고, 군사패권도 지키고…트럼프의 이원이차방정식
미국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양날(dual blades)의 칼’이다. 한쪽 날은 러시아의 전쟁비용 부담을 군사적 능력 약화의 계기로 만들 기회다. 전쟁이 지속돼야 이런 기회가 미국의 성과로 이어진다.
다른 쪽 날은 전쟁 지속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는, ‘악몽같은’ 시나리오다. 전쟁이 지속되면 전략경쟁 상대인 중국이 미국을 덫에 빠뜨리기 위해 러시아를 물심양면 지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가뜩이나 단극패권이 위협받는 가운데 브릭스(BRICS)가 범(집단)서방의 주도권을 송두리째 빼앗을 복으로 작용할 게 자명하다.
미국은 결국 전쟁을 끝내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관측된다. 제성훈 교수는 “미국으로서는 중러 밀착을 막고,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종전이든, 휴전이든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흔히 트럼프의 태도를 ‘미치광이 전법’으로 묘사하는 데, 이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제 교수는 “트럼프의 대외전략은 전통적 고립주의가 아니고, 강대국 세력권 인정은 더더욱 아니다”면서 “오히려 자국 세력권(서반구) 공고화와 동맹국에 역할 및 의무를 부가, 효율성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가 러시아편을 든다? 풉!…“천재 비즈니스맨”
제 교수는 “트럼프는 확실한 이익이 있는 곳에만 직접 개입한다는 입장이며,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세력권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동시에 전쟁이 길어져 중러 밀착이 심화되는 것도 막아야 하는 처지”라고 분석했다.
제 교수에 따르면, 실제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편을 들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도 계속하고, 중국과 인도에 러시아 원유 수입 중단 요구도 계속 요구해 왔다. 한번도 러시아 편을 든 적이 없다.
제 교수는 “트럼프를 미치광이로 보는 건 오히려 트럼프의 작전에 말려드는 것”이라며 “트럼프는 아주 똑똑하고 동물적 감각을 가진 비즈니스맨”이라고 강조했다.
이상현 <엔트로피>편집위원
러시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원,
지구촌 팩트체크기구 GFCN 회원. 고정 칼럼 [엔트로피 網] 등을 집필
